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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실 예산 삽교중 교사 |
방학이라 수업이 없는 것이 다행이다 싶을 정도로 정신없는 2월, 3월을 보내고 맞이한 4월도 첫날부터 정신이 없다. 하지만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오늘은, 만우절이니까. 작년에는 아이들이 반을 바꿔서 들어와 앉아 있기도 했었던 터다. 올해는 학년마다 한 학급뿐이라 반이 섞일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만우절은 만우절 아닌가.
하지만 아이들에게 미안할 만큼이나 아주 고요하게 1학년 수업이 끝났다. 하긴, 국어 선생님에게나 '슬기롭게 고사성어(故事成語)'지 아이들에게도 고사성어 이야기가 슬기로울 리가 있나. 주제 선택 주제가 이게 뭐냐고 짜증내지 않고 한자 쓰기, 단어 뜻 쓰기 학습을 따라와 주는 것만 해도 고마운 일이다. 게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꾀가 생긴 선생님은 학습지에서 아이들이 채워 넣어야 할 부분을 교묘하게 늘려가고 있지 않은가. 양면 가득 학습지를 채우느라 힘이 드는 듯 팔을 두드려 대면서도 아이들은 불평 한마디 던지지 않는다. "얘들아, 내년에는 주제 선택 다른 걸로 바꿀까?" 물어볼까 잠시 망설였지만 지금 만들고 있는 자료를 이번 한 번만 쓰고 말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에 말을 꾹 참는다. '얘들아, 미안. 하지만 선생님도 자료 만드느라 힘들단다.'
2교시 수업 시간. 당당하게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간다.
"얘들아, 안녕? 오늘 수행평가 아닌 것 알지?", "어, 저희 국어 수업 아닌데요?", "(요 녀석들, 만우절이라고 장난치는구나! 누가 속을 줄 알고?) 왜~애? 난 시간표 안 바꿨는데?", "원래 국어 수업 3교신데요?", "정말? 쌤이 시간표 잘못 봤나?", "우하하~"
휴대전화 배경 화면으로 설정해 둔 시간표를 확인한다. 역시나, 나를 믿어서는 안 되는 거였다. 1, 2, 3학년은 어제 시간표다. 오늘은 1, 3, 2학년. 하지만 당황한 티를 낼 수는 없지.
"그러네? 국어가 3교시네? 근데 지금 국어 시간 맞아. 수업 바뀌었어.", "정말요?", "뻥이야!"
아무렇지 않은 척은 했지만 교실을 나오는 뒤통수가 간지럽다. 아, 이놈의 정신머리. 아니, 눈이 문제인가?
3교시. 이번엔 진짜 2학년 수업이다. 복도를 걸어오는 머리만 보여도 냅다 "안녕하세요!" 인사하는 아이들이다. 귀여운 녀석들이라고 생각하며 교실을 들어서는 데 뭔가 분위기가 이상하다. 앞을 보고 앉은 아이, 뒤돌아 앉은 아이, 사과머리를 묶은 남학생들까지. "어제는 AI 버전으로 책을 읽더니 오늘은 사과머리야? 너무 귀여운 것 아니야?" "엥? 귀여워요?" "진수 좀 보세요~, 진수는 어디가 앞이게~요?" "에이, 돌아앉아 있는 거라고 생각하기엔 얼굴에 머리카락이 너무 많잖아?" 그러면서도 아이들은 "선생님, 수업해요!" 한다. "그럼, 수업해야지. 근데 그러고 수업할 거야?" "만우절이잖아요~. 아까 '뻥이야'에 대한 소심한 복수죠. 저희도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잖아요?" "하하. 근데 얘들아, 어쩌면 우리 1학기 1권 읽기 책 바꿔야 할지도 모르겠어. 아까 서점에서 전화왔는데, 일시품절이라 주문을 할 수가 없대. 인터넷 서점에서 구입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는 할 건데, 안되면 바꿔야 할 것 같아." "아… 아쉽다. 근데 사장님도 만우절 장난치시는 것 아니예요?" "쌤도 그랬으면 좋겠다."
임용 후 다섯 번째 학교에서 맞이하는 네 번째 만우절이다. 앞으로 몇 번의 만우절을 아이들과 보내게 될지는 자신할 수 없지만, 앞으로의 만우절에는 올해의 만우절 이야기가 생각이 날 것 같다. 그리고 소망해 본다. 앞으로의 하루하루도, 오늘처럼 이렇게 특별한 일 없이, 잔잔하게 웃을 수 있는 날들이 이어지기를. 모두에게 그런 날들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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