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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단원고 2학년 8반 담임교사 고 김응현 씨의 묘역을 찾은 김응상 씨 부부. 동생의 묘 앞에서 김 씨는 한참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사진=정바름 기자) |
세월호 참사 11주기인 16일 순직교사 고 김응현 씨의 형인 김응상 씨는 동생이 잠든 묘소를 찾아 자신이 쓴 수필을 들려줬다. 동생에 대한 그리움을 글로 풀어내고 싶었지만, 한 자 한 자 쓸 때마다 북받치는 감정에 한편을 완성하기까지 11년이 걸렸다.
김응상 씨는 동생의 묘비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당시를 회상했다. 단원고 2학년 8반 담임교사였던 김응현(당시 44) 씨는 2014년 4월 16일 사고 당시 29명의 제자를 구하기 위해 마지막까지 애쓰다 유명을 달리했다. 학생들이 선생님을 '아빠'라 부를 정도로 자상하고 정 많은 교사였다. 김응상 씨는 "참 애틋한 동생"이라며 "11살 터울에 막내라서 어렸을 때는 동생을 무릎에 앉혀놓고 함께 TV를 보기도 했다. 당시에 슬퍼하는 가족들을 대신해 경황없이 장례절차를 처리하고 한 달 뒤에나 참았던 눈물이 터졌는데 10년이 지나도 이 기억이 잊히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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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단원고 2학년 3반 담임 교사 고 김초원 씨의 아버지 김성욱 씨는 묘역을 찾아 짧은 생을 살다간 딸을 위로했다. (사진=정바름 기자) |
단원고 2학년 3반 담임 교사였던 고 김초원 씨의 아버지 김성욱 씨는 26살 꽃다운 나이, 그것도 생일날에 세상을 떠난 딸의 묘비를 어루만지며 눈물을 쏟아냈다. 거주지인 경남 거창에서 두 시간 넘는 거리지만 11년 동안 매월 찾아 딸을 보고 갔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교사의 꿈을 가진 딸을 응원해왔던 김 씨는 하루아침에 자식을 잃었다. 침몰하는 배에서 제자들에게 일일이 구명조끼를 입히고, 다독였던 김초원 씨는 당시 기간제 교사였다는 이유로 순직교사로 인정되기까지 2년의 시간이 걸렸다.
"이제는 잊고 살라"는 주변인들의 말은 김 씨를 더 아프게 한다. 그는 "어느 모임에 가든 가만히 있고 싶어도 주위에서 세월호 유족이라고 소개를 한다"며 "그러면 주변에서 '그만해라, 이제는 잊어버려라'라는 얘기를 한다. 딸이 비극적인 사고로 생을 마감했는데, 부모가 어떻게 잊고 살 수 있겠느냐"며 슬퍼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11년이 지난 지금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도 유족들을 애통하게 한다. 최근 해양심판원은 세월호 참사 원인에 대해 "선체 자체의 복합적 문제였다"고 뒤늦게 결론을 내렸다.
권영각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소방본부장은 "정부에서는 9번의 조사를 했다고 하지만 제대로 된 조사라면, 책임자 처벌이 이뤄졌어야 한다"며 "사람들이 이제는 세월호 참사를 잊을까봐 두렵다는 유가족들의 말을 들었다. 세월호를 우리 기억에서 지우려는 자들과 정치적 대립의 도구로 사용하는 세력에 함께 맞설 것"이라고 추모사를 밝혔다.
정바름 기자 niya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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