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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제공 |
윤석열의 핵심 측근이었던 장제원 전 의원이 지난달 말 사망했다. 장제원은 부총장 시절 비서를 성폭행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던 중이었다. 장제원은 내내 혐의를 부인하다 피해자의 결정적 증거가 공개되자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것이다. 유서엔 피해자에 대한 사과 한 마디 없었다. 장제원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정치권의 반응은 예상대로였다. 권성동, 나경원을 비롯한 국민의힘 의원들은 '가슴이 아프다', '죽음으로 업보를 감당했다'는 둥 일제히 장제원에 대해 애도했다. 그것도 모자라 10년간 고통을 견뎌왔을 피해자를 피의자의 사망원인으로 몰아 2차 가해를 저질렀다. 5년 전 박원순 당시 서울시장의 사망은 국민들에게 충격을 줬다. 오랫동안 인권변호사로 활약해온 박원순은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인물이었다. 이런 그가 비서를 강제로 성추행했다니. 더구나 이렇다 저렇다 말 한마디 안하고 바로 죽어 버리다니. 장제원, 박원순은 어떤 마음으로 죽음을 택했을까.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 문형배 헌재소장의 선고 요지 마지막 이 한 문장으로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국민들은 전율했다. 12·3 이후의 두통과 불안이 한 순간에 사라졌다. "내란몰이만 믿고 날뛰다가 황소 발에 밟혀 죽는 개구락지 신세"라고 쉰 목소리로 헌재를 모욕하던 장동혁의 표정이 궁금했다. 헌법재판관의 전원 일치로 파면된 윤석열은 말이 없었다. 며칠 뜸을 들인 후 한다는 말이 가관이었다. "나라의 엄중한 위기 상황을 깨닫고 자유와 주권 수호를 위해 싸운 여러분의 여정은 대한민국의 위대한 역사로 기록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지지와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어이가 없었다. 무식하고 무능하고 판단력·통찰력은 눈 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는 어리석은 인간. 그러니 죽이지 못해 안달하던 이재명에게 대권가도라는 레드카펫을 제대로 깔아주는 것 아닌가. 이재명은 '이게 웬 떡이냐' 싶었을 게다.
다시, 장제원·박원순은 왜 사과하지 않고 숨졌을까. 정치생명은 끝났구나 싶어서? 명예를 지키기 위해? 일말의 양심으로? 나종호 예일대 정신의학과 교수는 '유퀴즈'에서 "자살이 명예로운 죽음으로 포장되고 면죄부인 것처럼 여겨선 안된다"고 잘라 말했다. 우리는 잘못을 저지른 정치인에게 끊임없이 사과를 요구한다. 어떤 이는 끝까지 사과를 거부하는가 하면 어떤 이는 마지못해 사과하기도 한다. 정치인의 사과는 다분히 정치적이다. 5·18 학살자 전두환은 국민에 사죄한 적이 있지만 누구도 그의 진정성을 믿지 않았다. 죽을 때까지 거짓말을 일삼고 국민을 우롱하면서 뻔뻔하게 잘 먹고 잘 살다 죽었다. 전두환의 아바타 윤석열은 잘못을 뉘우칠까? 서초동 관저 앞에서 트럼프처럼 빨간 모자를 쓰고 "다 이기고 돌아왔다.… 나라와 국민을 위한 새로운 길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파면된 주제에. 그에게 사과 받기란 애저녁에 글러 먹은 것 같다.
이제야 지면을 빌려 친구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 당시엔 친구를 피하는 데 급급했다. 또 그 선생은 그날을 기억이나 할까? 에피소드 하나. 8살 때 옆집에서 TV 드라마 '신부일기'를 보던 중 이해할 수 없는 낱말 때문에 혼란스러웠다. 극중 아내가 남편에게 말했다. "고모님께 사과하세요." 사과? 내가 아는 사과는 명절에나 먹는 맛있는 과일이었다. 그런데 사과를 '하라'고? 아, 혹시 윤석열도 사과의 의미를 모르나? 사과는 피해자와 가해자가 서로 상처를 치유하고 성찰하는 길이다. 하여 사과 없는 용서는 무의미하다. <지방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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