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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필용 원장 |
우리는 어려서부터 학교에서 민주주의를 배운다. 학교 반장을 뽑을 때도 더 많은 표를 얻은 사람이 당선된다. 하물며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의견이 상충되면 다수결로 정하기로 한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다수의 의견에 따르는 다수결의 원리이다. 제도내에서 갈등이 발생될 때 더 많은 사람들이 따르기를 원하는 결론을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인식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다수의 의견이 항상 합리적일까? 플라톤의 말처럼 나쁜 결과에 빠지지 않으려면 선택에 참여하는 모든 구성원들이 합리적이어야 그들의 다수가 선택한 결과가 합리적일 수 있다.
인간이 합리적 존재라는 것은 근대 이성주의 시대의 믿음이었다. 인류는 끔직한 식민지 전쟁, 노예제도, 세계대전, 인종학살 등 반 인륜적 범죄를 저질렀고, 합리적 존재라는 생각에 의문을 품게 되었다. 인간의 합리성이 깨지고 나면 과연 다수의 선택은 늘 올바른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는 전제는 사라진다. 그래서 정치가 필요하다. 좋은 결과에 근접할 정도로 합의하고, 그 최종 선택만을 국민들에게 물어보는 방식으로 정치는 민주주의 제도를 보완해왔다. 민주주의를 최선이 아닌 차선의 선택이라고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민주주의의 선택에서 소수로 남겨진 의견들이 있다. 때로는 그 의견들이 더 합리적이거나 중요한 가치가 있을 수 있다. 예를 들면 구성원들이 가진 철학적 차이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선택으로 좋고 나쁨을 나눌 수 없다. 기호의 문제도 마찬가지여서 다름만 존재한다. 만약 다수의 의견이 특별한 상황에서 오염된 정보에 기반한 것이라면 오히려 이를 반대하는 소수의 의견을 따라야 할지도 모른다. 이런 문제들을 민주주의는 극복해야 한다. 그래서 만들어진 제도가 단순 과반수보다 더 많은 동의를 요구하는 방법이다. 2/3 동의제도와 만장일치는 더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구하고 소수가 따르도록 하는 제도이다.
정치에서도 소수 배려제도는 다양하게 존재한다. 예를 들면 헌법개정과 같은 문제는 국회재적의원 2/3의 찬성으로 발의된다. 대통령의 법률안 재의요구권도 다수의 의견에 대한 견제장치이고, 재의요구를 다시 의결하기 위해서는 2/3의 찬성을 필요로 한다. 법률안에 대한 심사제도 역시 소수 배려 제도의 한 형태이다. 대체로 대한민국을 비롯한 민주주의를 제도에서 대부분의 나라들이 선택한 제도이다. 일부 국가들은 상하원 양원제를 통해 이를 더욱 강화하기도 한다.
그런데 소수의 의견을 배려하고, 다수의 의견이 틀릴 수 있다는 가정에서 만들어진 현대 민주주의 제도가 극단적 소수 또는 민주주의 제도를 악용한 독재자들에 의해 왜곡되는 현상들이 발생한다.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탄핵 심판 과정에서 모든 국민들을 마음 졸이게 했던 것은 바로 명백한 탄핵 사유에도 소수가 이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극단적 소수가 민주주의 제도의 허점을 이용하면 다수의 의지를 꺽을 수 있다는 것을 매우 참담하게 느꼈다.
다행히도 우리 국민들은 그런 극단적 상황에서 탄핵 인용의 압도적 찬성으로 헌재를 압박해 민주주의를 지켜냈다. 독재자는 민주주의 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등장하고, 감시가 느슨한 틈을 타 우리 곁에서 성장하다 결정적 순간에 우리 삶을 황폐하게 만들 수 있다. 그리고 다수의 의지를 꺽는 나라를 만들 수 있다. 윤석열은 그 증거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거의 대부분의 민주주의 국가들이 겪었던 위기의 순간에서 국가와 우리의 미래를 구해냈다. 민주주의 역사가 깊은 나라들도 여전히 보완하지 못하고 있고, 더 후퇴하고 있다. 미국이 대표적이다. 우리는 다른 미래를 시작하고 있다. 국민들이 원하면 이루어지는 나라, 더 좋은 미래를 꿈꿀 수 있는 나라 말이다.
/안필용 CDS 정치아카데미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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