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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중구 문화동 보문산에서 표층 밖으로 드러난 흑연 광맥과 검댕이 쉽게 묻는 돌멩이. (사진=임병안 기자) |
10일 중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중구 문화동 한밭도서관과 충남대병원 뒤편의 보문산 중턱에서 앞서 발견된 굴착 흔적은 지하자원의 하나인 흑연을 채굴하던 현장으로 확인됐다. 이곳은 1948년 촬영된 보문산 항공사진에서 산 중턱까지 차량이 오르내리는 도로가 확인되는 곳이다. 충남대병원 주변에 도로가 없을 때 채석 이뤄진 곳까지 임도가 먼저 개척돼 있었다. 지금도 현장에서는 바위를 차곡차곡 쌓아 만든 임도가 일부 구간에 남아 있으며 임도 끝 지점에 바위를 깨트리고 굴착한 흔적이 여럿 남아 있다. 또 언제 만든 것인지 예상할 수 없는 3개의 샘터가 있다. 주민들은 이곳이 흑연을 채굴하던 현장이라고 동일하게 증언했다. 60대 한 주민은 "여기서 태어나 한평생 사는 동안 마을 뒷산에서 흑연을 캤다는 이야기를 어른들에게 자주 들었고, 어렸을 때 거기 가서 놀면 검댕이가 손에 묻고 얼굴도 새까맣게 되곤 했다"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80대 주민은 "예부터 이곳을 과례마을이라고 불렸고 지금은 빗물에 씻겨서 그렇지 옛날에는 뒷산 흙바닥이 새까맸는데 광복 후에도 한동안 일본인의 양철지붕 주택이 남아 있었다"라고 기억했다. 기자가 바닥에 떨어진 돌멩이를 주워 손을 비벼보니 검댕이가 짙게 묻었고, 흑연으로 보이는 폐석들이 이곳저곳에 남아 있었다. 일제강점기 금을 채굴하는 현장은 서구 도솔산과 중구 무수동에서 발견되고 석탄 탄광도 있었으나, 흑연 광산은 처음 보고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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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보문산 항공사진에 산 중턱까지 개척된 임도와 공사 이뤄진 모습이 보인다. (사진=대전시청 공간정보포털) |
다만, 적산 대동아연필이 언제부터 대전에서 연필을 생산했는지 자료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대동아연필은 1944년 당시 신문에 제3회 결산공고를 냈고, 지금의 일본 미쓰비시연필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상일 대전대 교수는 중도일보와 통화에서 "일제강점기 대전 주변에 가축이 많아서 대전피혁이 성장했고, 품질 좋은 콩이 생산돼 후지츄장유가 있었던 것처럼 동아연필의 전신인 적산 대동아연필 역시 원료자원이 주변에 있었기 때문에 대전에서 시작했던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라며 "대전에서 가장 오랜 역사가 있는 동아연필과 보문산의 흑연과의 관계에 대해 연구해봄직 하다"라고 설명했다.
임병안 기자 victoryl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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