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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진 교수. |
또 일본에는 그들만의 충견 실화가 존재한다. 주인공은 죽은 주인을 마중하러 매일 기차역으로 나간 하치다. 이런 까닭에 1934년 시부야 역에 하치 동상을 세우고, 이후 이야기는 영화와 TV 시리즈물로 제작된다. 리처드 기어 주연의 '개 같은 내 인생'은 이에 영감을 받아 각색한 영화다. 물론 이런 이야기는 우리도 있다. 가장 잘 알려진 설화는 전북 임실군 오수의 지명 유래담이다. 술에 취해 잠든 주인을 들불로부터 살리고 죽은 의견에 관한 이야기다. 개 주인 김개인은 그 자리에 무덤을 만들고 지팡이를 꽂아 두었는데, 그 지팡이가 큰 느티나무로자랐다. 그래 오수(獒樹)다.
그리고 또 기억나는 건 파면당한 대통령의 예전 '개와 사과' 사진이다. 새하얀 털과 극명하게 색채 대비를 이룬 까만 눈망울 까만 코를 가진 강아지, 그 앞에 고전적 정물 소재 파란 사과가 놓인 사진이다. 문제의 사진은 대선을 앞두고 "전두환 대통령이 군사 쿠데타와 5·18만빼면 정치는 잘했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다."는 발언과 연관한다. 이에 '유감'을 표하고, 통하지 않자 다시 '송구'의 뜻을 밝히고, 급기야는 '사과'를 표명했다. 반전은 곧바로 사과 요구를 조롱하는 듯 앙증맞은 반려견과 사과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미적 감각에 있었다. 사과는 개에게…
개에 관한 이야기라면 또 폭언의 험구와 세금 탈루와 기행으로 악명 높았던 부동산 재벌 리오나 헴슬리를 빼놓을 수 없다. 세상에 그녀만큼 개를 사랑한 이가 있을까. 그녀의 개 사랑은 폭언이나 탈세나 기행만큼 유별났다. 그녀는 유언장에 자신의 몰티즈 종 애견에게 무려 1200만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유산 상속 유언장을 남기고 세상을 떴다. 더불어 자신의 애견이 죽으면 자신이 묻힌 호화 묘지에 매장하라는 유언도 남겼단다. 부시의 푸들 얘기는 지면 관계상 접어두자.
개는 고양이와 함께 정서적으로 인류와 가장 친밀한 동물 중 하나다. 그런데 의견이나 충견에 관한 미담, 그 애절한 사랑에도 불구하고 동서양을 막론한 많은 나라에서 상대를 모욕하는 욕설이나 말에 개는 단골처럼 등장한다. 철학자 들뢰즈는 개를 동물계의 수치라 말했다. 주인을 위해 짖어대기 때문이다. 사실 동물들은 잘 짖는 것 같지만 짖지 않아야 한다. 사자나 호랑이 같은 상위 포식자가 짖으면 "나 여깄오!" 외치는 꼴이고, 약한 놈이 짖으면 "나 잡아 잡수오!" 알리는 셈이기 때문이다. 오직 개만이 주인을 위해 잘 짖는다.
산책길에 반려견을 동반한 이들을 만나는 일은 일상의 흔한 풍경이다. '개식용금지법'이 제정되고, 또 거리엔 보신탕집 대신 애완동물 호텔이며 펫 전용 가게들이 들어섰다. 이를테면 애완동물은 이제 하나의 산업이며 문화가 된 셈이다.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들뢰즈처럼 개를 기생동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개의 라틴어 학명 카니스(canis)는 기생충, 즉 빌붙어 먹고 사는 식객이다. 인간은 개를 가족 구성원 반열에 올렸다. 동물학자들은 이를 인간과의 감정교류에서 개가 진화적으로 성공한 것으로 여긴다. 이제 다시 대선, 기생을 자처한 충견들이 또 컹컹 짖어댈 것이다.
김홍진 한남대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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