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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일 사회공헌연구소 대표 |
이번 탄핵 사태에 대해 어떤 이는 국가적 손실이자 국민적 불행이라고 보기도 하고, 다른 어떤 이는 국가적 전화위복이자 역사적 자산이라고 보기도 한다. 이처럼 제각각인 것은 아마도 인간이 생각하는 존재를 뜻하는 '호모 사피엔스'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헌재가 윤석열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대통령 파면에 따르는 국가적 손실을 압도할 정도로 크다"고 밝힌 점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또한 인간사가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라는 속담이나 셰익스피어의 희곡 '죄는 지은 데로 덕은 닦은 데로'(Measure for Measure)처럼 사필귀정(事必歸正)으로 귀결된다는 세상의 이치도 헤아려볼 필요가 있다.
12·3 비상계엄부터 4·4 헌재 선고까지 넉 달 동안, 수많은 국민은 분노와 적개심으로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고, 때로는 불면의 밤을 지새웠을 것이다. 이러한 정신심리적 압박은 윤석열의 파면으로 어느 정도 해소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국민적 불안감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으며, 일종의 집단적 트라우마는 아직 치유되지 않은 듯하다. 이는 무엇보다 이번 탄핵 사태를 야기한 내란에 대한 단죄가 이루어지지 않은 데다가, 앞으로 두 달 동안 펼쳐질 대선 정국에서 예상되는 극심한 갈등과 혼란에 대한 우려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윤석열 파면 이후 가장 시급한 과제는 신속한 내란 재판의 진행과 국민통합에 초점을 두는 선거운동의 조성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윤석열의 내란 혐의에 대한 재판은 오는 14일부터 시작된다. 전문가들은 윤석열이 구속되지 않은 상태인 만큼 1심 재판만 해도 2년 이상 걸릴 수 있다고 예상하고 있다. 더욱이 검찰의 공소가 미흡하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어, 재판과정에서 법리 공방이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 이럴 경우 재판을 둘러싼 정치적·사회적 분열과 대립은 종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다. 이는 미증유의 국내외 도전을 국민 통합적으로 응전해야 하는 시대적 과제를 안고 새롭게 출범하는 정부의 발목을 잡게 될 것이다. 이러한 예상 밖의 난제를 대처하기 위해서는 1당과 2당 간의 합의에 의한 내란 특검이 도입될 필요가 있다. 특검 도입 협상에서 내란 재판의 신속성 확보, 내란 혐의자의 범위 설정, 윤석열의 재구속 여부 등과 같은 정무적 사안들에 대해서도 대승적인 타협을 모색할 수 있다.
만약에 대화와 타협의 의회정치가 복원된다면, 개헌 논의 역시 주목해볼 만하다. 헌정 제도적 차원에서 보면, 이번 탄핵 사태의 근원 중의 하나는 정부와 국회와의 관계가 견제와 균형, 나아가 관용과 자제가 아닌 배제와 대결로 작동해 온 데 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이 점에서 대선 선거일에 개헌안 국민투표를 동시에 실시하자는 우원식 국회의장의 제안은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 하지만 소명의식과 균형감각, 그리고 선공후사(先公後私)가 뒷받침되지 않은 개헌 논의는 오히려 또다른 갈등의 진원지가 될 수 있다. 사실 '원 포인트' 개헌 제안은 "급하다고 바늘허리에 실 매어 쓰랴"라는 속담처럼 정도(正道)라고 보기는 어렵다.
다가올 6월 3일에 실시 될 제21대 대선에는 여느 때처럼 후보들과 정당들이 사활을 건 치열한 경합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이번 대선은 선거운동의 강렬함과 치열함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지 모른다. 동시에 증오와 적대감이 횡행하는 상황도 예상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혼란 속에서 오히려 국민 통합적 미래비전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국민에게 진실한 겸허함을 보여주는 후보가 승리의 고지에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부디 이번 대선을 통해 헌법재판소의 선고문에서 언급했듯, "자신을 지지하는 국민을 초월하여 사회공동체를 통합시켜야 할" 대통령이 선출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해 본다. 유재일 사회공헌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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