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디세이] 김종임의 꿈, 담론을 이해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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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디세이] 김종임의 꿈, 담론을 이해하고 싶었다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 승인 2025-04-07 11:00
  • 심효준 기자심효준 기자
이승선 교수
이승선 교수
"노인은 흔히 왕년의 무용담을 열을 올려 이야기하고, 젊은이는 노인의 이야기를 예의상 억지로 듣기 십상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타인의 자화자찬을 듣기 싫어한다. 그래도 나는 내 자랑 좀 해야겠다." 벤저민 프랭클린의 말이다. 그는 자랑쟁이가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다고 믿었다. 자신을 자랑하는 것은 하늘이 준 축복이라고 보았다. 그는 입의 말로 자랑하지 않고, 자서전이라는 기록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남겼다. 기록으로 남겨두면 읽든 말든 그것은 젊은이들이 알아서 판단할 그들의 몫이라고 보았다. 인쇄소의 식자공과 신문 발행인으로 일했던 이력이 묻어난 발상이었다. 백달러짜리 미국 화폐에 그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

백여년 전 하버드대학 총장 엘리엇은 미국인들에게 읽히고 싶은 불멸의 교양도서 50권을 펴냈다. '하버드 클래식스'다. 프랭클린이 쓴 자서전이 그 전집의 첫 번째 책이다. 피뢰침의 발명가이자 미국 건국의 아버지로도 유명한 그는 가난하고 미천한 집안에서 태어나 자랐다. 정규 교육은 2년밖에 받지 못했지만, 언제나 성실했고 혁신을 꾀했다. 무엇보다 책을 즐겨 읽었다. 독서 덕분에 주지사를 만나고 여러 나라 국왕도 만났다. 미국 초대 대통령에 취임한 조지 워싱턴이 필라델피아를 방문했을 때, 그의 첫 번째 공식 일정은 프랭클린 예방이었다. 대통령은 그를 '큰 어른'으로 정중하게 모셨다.

'큰 어른' 한 분을 만났다. 김종임이다. 1938년생이니 올해 여든여덟, 미수다. 3녀 2남의 셋째로 태어났다. 오라버니는 일반대학에 진학했고 남동생은 사관학교에 갔다. 김종임은 초등학교만 마쳤다. 혼자 대학에 진학한 자신은 형제들에게 고통을 안긴 죄인이라며 비록 지난날을 되돌릴 수 없으나 부디 용서해 달라는 오라버니의 절규를, 김종임은 넉넉하게 품어내고 오히려 오라버니를 위로한다. 김종임은 오라버니가 테레사 수녀님과 같은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칼럼을 쓰기 위한 취재 인터뷰에서 김종임은, 오라버니와 같은 대한민국의 숱한 장남들이 형제들에게 갖고 있는 그 무거운 마음의 짐을 부디 벗어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맷돌처럼 무겁고 숯처럼 검게 타들어갔을 장남들의 고뇌에 머리 숙인다고도 말했다.

김종임은 공부를 하고 싶었다. 고전을 봐도 이해하기 어려울 때 특히 그랬다. 신영복 선생의 '담론'을 세 번 읽었다. 이해하기 어려웠다. 일흔여덟에 학생이 되었다. 중고등학교 과정에 들어가 여든하나에 졸업했다. 대학 진학을 꿈꾸었으나 스터디그룹원이 될 젊은 대학 동창생들에게 폐가 될 듯하여 실행하지 못했다. 70여 년 전, 고등학교에 다니던 남동생이 학교에서 배운 가곡을 그에게 들려주었다. 가곡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된 김종임은 성악반에 등록해 가곡 배우기에 열심이다. 라임댄스도 배우고 발레 공연 관람도 즐긴다. 스무살 청년처럼 살아가지만, 그렇다고 다시 20대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없다. 지금 행복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돌아보면 큰 아이가 대학에 입학했을 때가 생에서 가장 행복했다. 살림이 어려웠던 그 시절 '만약 큰 아이를 교육시키지 못한다면 살아 있을 이유가 없다'라고 생각했었다. 무릇 대한민국의 모든 부모와 장남의 마음이 자신의 그것과 같았을 것이라고 김종임은 말했다.



노인의 죽음은 박물관 하나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고 한다. 질곡의 긴 생을 견뎌냈다는 사실만으로도 노인은 존경받아야 한다. 누구나 노인이 되지만, 누구나 '큰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닌듯하다. 망상에 빠진 그릇된 자의 위헌·불법한 비상계엄 선포와 헌법재판소의 탄핵재판 와중에, 노년에 접어든 어떤 학자들은 젊은 시절에 쓴 자신의 저술에 엇나가는 행동거지로 그들의 저술을 옳다고 배운 젊은 세대를 당혹케 만들었다. 사람의 생각과 신념은 바뀔 수 있고 바뀌는 것이 바람직할 수도 있으나, 수백 페이지 짜리 책으로 광범하게 후학을 견인한 예전의 저술과 지금 주창하는 내용이 같지 않을 때 그의 학식과 신념이 바뀐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처신이 달라졌을 뿐인지 의아해진다. 삶과 학문의 '큰 어른'으로 받들고 배웠던 분들이 그저 나이든 노인처럼 쇠락할까봐, 나도 그렇게 불의한 세월에 곡학을 하는 쇠잔한 노인이 되어갈까봐 겁이 난다. 큰 어른을 흔들지 않는 세상, 사적이든 공적이든 예제서 더 많은 큰 어른들이 후대의 삶에 이정표가 되어주는 세상을 꿈꾼다.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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