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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백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전 헌법연구관 |
2025년 4월 4일 헌법재판소가 겨울 밤에 있었던 일에 대해 판단했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사건 형식을 띠었다. 주문은 명료했다.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 너무도 간단하여 허전함을 느낄 정도이다. 이 한 문장으로 그날의 일이 정리되나 싶을 만큼. 이유는 길었다. 헌재는 114쪽에 이르는 결정 이유를 통하여 작년의 일이 우리 헌법과 법률의 관점에서 어떻게 평가되는지를 분명하게 보여 주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누구도 헌법이나 법률 위에 설 수 없다는 것. 누구도 헌법과 법률에 어긋나는 행위를 하면 그 직을 유지할 수 없다는 분명한 사실을 공직자나 국민에게 환기시켜 주었다.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예외가 될 수 없다.
헌법재판소의 재판과정에서 대통령 측은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행위에 대해 법원이나 헌법재판소가 왈가왈부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헌법 및 법률이 정한 요건을 갖추고, 헌법과 법률이 정한 절차에 따라 권한을 행사하여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고도의 정치행위라 하여 사법심사를 면제한다면, 헌법과 법률이 정한 것들은 무의미한 것으로 되고 말 것이고, 대통령이 헌법과 법률 위에 군림하는 것을 통제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우리 헌법이 그것을 예정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헌법재판소는 정치과정에 있어서 대화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오늘날 민주주의 체제는 대의제를 채택하고 있고, 다수 국민의 지지를 얻는 정당이 국정의 주도권을 행사하는 것을 보장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이라도 야당과의 대화를 통하여 국정을 협의하고, 합의할 수 있는 결론을 도출해 내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지적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겨울 시민과 군경이 어떤 일을 하였는가를 결정문에 썼다. "국회가 신속하게 비상계엄해제요구 결의안을 가결시킬 수 있었던 것은 시민들의 저항과 군경의 소극적인 임무 수행 덕분"이라고 밝혔다. 짧게 써진 말이지만, 헌법재판소가 시민과 군경에 바치는 한 송이 꽃과 같은 말이다. 작지만 아름다운 말이다.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들의 몸짓이 민주주의를 지켰다. 헌재는 이를 기억하고 표기했다.
긴 터널을 지나온 느낌이다, 라는 말은 진부하다. 터널을 들어설 때, 그 끝이 있을 것이라는 것, 그 끝이 밝을 것이라는 것을 안다. 그래서 조금 가슴이 답답하더라도, 조금만 참으면 작은 덩어리의 불빛이 다가올 것이며, 그 뒤에 눈부신 태양을 맞게 되리란 것을 안다. 그러나 우리는 최근 얼마간 불안을 안고 잠들지 못했다. 과연 이 시절의 끝이 있을 것인지, 그 끝에서 우리가 무엇을 보게 될 것인지를 알지 못했다. 공화국의 미래를 걱정하기도 했다. 그 사이 서로 상처로 남을 말을 하고, 손가락으로 어두운 곳을 가리켰다.
지난 4일 우리는 우리 공동체가 정한 절차에 따라 만들어진 결론을 받았다. 끝이다. 모두를 만족시켰다고 말하기는 어려울지 모르겠다. 다행스럽게도 눈을 돌려 쳐다보아야 할 일이 벌어지지는 않았다. 광장의 시민들은 이제 기계에 기름칠을 하고, 아이를 안고 보행신호를 기다리며, 씨를 뿌리고, 저녁밥을 짓는 일상을 보살피게 되었다. 이것은 꿈이 아니다. /정주백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전 헌법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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