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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현자(賢者) 8인의 헌법재판관들은 지난 4일 전원일치로 인용 결정을 하면서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지켜야 할 '헌법 정신'을 최우선의 가치로 내세웠다.
45년 만에 선포된 비상계엄과 그로 인한 극심한 사회적 갈등 속에서 진행된 윤 전 대통령 탄핵심판에서 법적인 논리만 나열하기보다는 국민 통합과 화해를 위한 메시지를 던질 필요가 있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정치권에 따르면 재판관들은 전원일치로 윤 전 대통령을 파면하기로 합의를 마친 뒤 결정문을 썼다가 결론 부분을 추가했다.
사실관계 인정과 법률 위반 검토, 중대성 판단 논리 등 결정문의 다른 부분은 이미 작성된 상태였지만, 재판관들은 추가 지시를 통해 헌법 제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로 시작해 헌법 전문(前文)에 나오는 '대한국민'으로 끝나도록 수정하고 헌법정신을 강조했다.
헌법 본문의 총강을 시작하며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민주공화국으로 천명한 1조 1항과 헌법 본문 앞의 서문에 해당하는 전문에 쓰여 국가의 주권자인 국민을 강조하는 '대한국민' 두 표현이 맨 앞과 맨 뒤 양쪽 끝에 수미상관 구조로 배치된 것이다.
일반적인 헌재 탄핵심판 결론은 재판관의 의견 분포와 그에 따라 결정된 주문 정도만 적혀있어 3~4줄 분량으로 간단하다. 박근혜·노무현 전 대통령과 한덕수 국무총리 사건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번 결정문은 5쪽 분량으로, 재판관들이 선고일 발표 이후 이틀간 종일 평의를 열어 선고 당일인 4일 아침까지 최종 문구를 검토했다고 전해졌다.
재판관들은 이번 사건 결정문이 단순한 판결문이 아니라는 인식 하에 사회에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는 데 공감하며 결론 작성에 신중을 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혼란과 분열이 극심한 때일수록 사회의 근간인 헌법 정신을 되새기며 민주주의를 지키고 발전시켜야 한다는 재판관들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이후 헌재는 네 단계로 논리를 전개했다.
윤 전 대통령이 임기 중 야당의 예산 삭감과 이례적으로 많은 탄핵 으로 국정이 마비와 국익 저하를 우려했을 수 있으나, 그 책임 소재를 일방으로 한정하기 어려우며 문제 해결 역시 민주주의 원리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헌재는 윤 전 대통령의 계엄 선포 목적을 '국회와의 대립을 병력을 동원해 타개하기 위한 것'으로 규정하고 "민주정치의 전제를 허무는 것으로 민주주의와 조화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이어 그 외에도 헌법 개정안 발의, 국민투표, 법률안 제출, 위헌정당해산 제소 검토 등 민주 국가의 대통령으로서 선택할 수 있는 다른 대안도 있었다는 지적도 덧붙였다.
헌재는 "피청구인은 국가긴급권 남용의 역사를 재현해 국민을 충격에 빠트리고, 사회·경제·정치·외교 전 분야에 혼란을 야기했다. 국민 모두의 대통령으로서 자신을 지지하는 국민의 범위를 초월해 국민 전체에 대해 봉사함으로써 사회공동체를 통합시켜야 할 책무를 위반했다"고 말하며 파면이 정당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한편,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낭독한 7200자 분량의 선고 요지에는 '민주'라는 단어가 9회, '국민'은 13회 등장한다.
최화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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