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한(後漢) 순제(順帝) 때, 학문이 뛰어난 장해(張楷)라는 사람이 있었다. 학문이 매우 뛰어났지만 벼슬길에 오르지 않았다. 고향인 흥농산 계곡에 들어가 살았는데, 따르는 사람이 많아 문전성시가 되었다. 그는 도술에도 뛰어나, 나라에서 벼슬하라 사신 보내면 5리 까지 안개를 일으켜 숨어 버리곤 하였다. 현인다운 처사가 '오리무'에 '속'자가 붙어, 난데없이 알 수 없는 상황을 이르는 말이 되었다.
오리무중이면 갈피를 잡을 수 없어, 모든 게 예측불허가 된다. 계획도 준비도 일도 할 수 없다. 절대적이진 않더라도 예측 가능해야 미래의 설계가 가능하다. 국가사회가 예측불허상황이 되면 망국의 길로 가게 된다. 할 수 있는 일이 없고, 불안만 가중된다.
응용소프트웨어 개발사업 할 때 일이다. 병의원의 처방전관리 및 진료수가청구 프로그램을 보급하고 있었다. 약국의료보험이 1989년 10월에 실시되었다고 하니, 그 전에 있었던 일인 듯싶다. 접근성 및 편의성 때문에 약국 이용률이 더 많으니, 수가 청구업무를 수작업으로 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었다. 또한 약국 숫자가 병의원보다 훨씬 많아 수요가 많을 것으로 기대되었다. 실시와 동시에 약국용 프로그램을 보급하기 위해 개발팀과 영업팀을 구성하였다. 공시한 날짜가 되니 무기한 연기한다는 것이었다. 예닐곱 명의 인력을 더 이상 관리할 수 없어 해체하였다. 인건비만 날린 꼴이 되었다. 일 년 수개월 만에 시행되었지만, 이어서 약사법 개정, 의약분업 등이 논의되었다. 1993년 개정된 약사법에서 의약분업을 1999년 7월 7일 이전에 실시하도록 규정하였다. 우여곡절을 거쳐 1999년 12월 의약분업 안이 포함된 약사법이 통과 되었으며, 2000년 7월 1일부터 시행에 들어가려 했으나 의약분쟁으로 8월 1일에야 실시되었다. 재개할 시간을 갖지 못하고 결국 포기했다.
분명, 정책에 대한 정밀한 분석이나 치밀하게 계획하지 못한 잘못이 있다. 당시 사회나 국가정책에 대한 이해부족도 작용했다. 당연히, 정부 정책은 계획대로 시행되는 것으로 생각했다. 경험부족으로 정착되지 않은 변화단계의 정책 가변성을 참작하지 못한 것이다.
경제적 손실뿐이 아니다. 600여 업체를 관리하며 어렵사리 꾸려 나갔지만, 결국 재기하지 못했다. 일생이 무너진 것이다. 본의 아니게 관계업체에도 피해를 끼쳤다.
약속의 파기는 인위적 오리무중이다. 더하여 의도적으로 펼치는 연막전술도 있다. 사회의 존속과 발전, 유지가 가능한 것은 약속이 있기 때문이다. 약속에 의해 공동체 유지가 가능하다. 구성원 간 관계유지와 안정된 생활이 보장된다. 공동선으로 정당성을 획득해 간다. 구성원들의 자유로운 동의로 이루어지던 것이 점차 도덕이 되고, 계약 및 법제화가 되었다. 곧 법치다. 장 자크 루소의 주장처럼 인간의 자유와 국가가 조화를 이루고, 국가 주권의 유일한 담당자가 국민이 되는 것으로 발전해 왔다.
오늘날 우리사회는 어떠한가? 오리무중이요,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예측불허의 총체적난국이다. 민주주의의 근간인 삼권분립이 위태하고, 경제와 민생은 도탄으로 빠져든다. 법치가 무너져 죽피에 가로왈이다. 토 달아 법망만 피하면 된다. 나아가 상식까지 무너졌다. 의회독재가 진행 중이다. 조장된 극단적 대립상황이다. 얼굴 마주하고 살지만 만리타향이요, 말이 통하지 않는다. 아무렇지도 않게 날조하고, 조작과 거짓을 일삼는다. 나라가 추락 직전이다.
오리무중인데 무엇인들 가능하랴. 안개 제거가 정상화의 유일한 길이지만, 쉽지 않다. 안개 제거는 주권자가 바로 서는 것이다. 늘 그래왔듯 제대로 된 주인정신의 발로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1924년 동아일보에 발표한 '동포에게 고하는 글'에서 자신의 주인은 누구인가? 사회의 주인은 누구인가? 민족의 주인은 누구인가? 역사의 주인은 누구인가? 묻고 있다. 스스로 책임지는 사람이 주인이라고 답한다. 특히 민족사회에 대한 영원한 책임감을 강조하고 있다. 주인은 외면하거나 방관하지 않는다. 남에게 책임을 미루지도 않는다. 책임은 실천으로 완성되는 사랑이다. 곧 주인정신은 책임의식, 권리의식, 주체의식, 참여의식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
양동길/시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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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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