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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년 계룡산성이 시간이 흘러 무너지고 낙엽이 쌓여 옛 모습을 추정하기도 어려워졌다. 국가적 규모의 토목공사에 많은 양민들이 돌을 날랐을 것으로 여겨진다. /사진=임병안 기자 |
봄을 시샘하는 꽃샘 추위로 눈발까지 날린 3월 29일 중도일보는 공주시 계룡면 신원사 방면의 계룡산을 찾아 6시간 가량의 계룡산성 탐방을 벌였다. 등반한 지 1시간쯤 흘러 등산로가 계곡과 만나는 지점에서 사람 키를 훌쩍 넘기는 돌담을 만나면서 계룡산성은 시작된다. 가장 아래에 여행용 가방 만한 큰 돌로 기초를 쌓고 그 위로는 30~50㎝ 정도 성돌을 불규칙적으로 쌓아 사이사이 빈틈에 작은 쇄기돌을 박아넣었다. 고려시대 이후 성벽의 일반적 축조방식이다. 성인 혼자 들기에 버겁게 보이는 화강암을 층층이 쌓아 5m 이상의 높이는 되어 보였고, 계룡산의 급경사를 따라 성벽도 가파르게 치고 뻗어간다. 이곳부터 연천봉과 문필봉 그리고 관음봉에 쌀개봉까지 돌을 하나씩 쌓아 성곽을 둘렀고, 성내 면적은 60만㎡에 이른다. 이곳 등산로에서는 기와 부서진 조각을 자주 볼 수 있는데, 등산객들이 흔히 쌓은 돌탑처럼 이곳에서는 깨진 기와편을 탑처럼 쌓아 올린 것을 어렵지 않게 관찰할 수 있다. 1231년부터 1270년까지 몽고군의 6차례 침략부터 1290년 합단(카단) 침입과 격퇴 그리고 1380년 7월 왜구의 노략질을 피해 고려인들이 계룡산성 안으로 대피했을 때 주거지와 창고 등에 쓰이던 기와가 시간이 흘려 부서진 조각으로 추정된다. 또 산성도 상당수 무너지고 그 위에 자연 할석이 다시 쌓이면서 원형을 추적하기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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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산 신원사 방향 중턱에 남은 산성의 온전한 모습. 화강암을 층층이 쌓아 5m 이상의 높이에 총 연장 4.8㎞에 이른다. /사진=임병안 기자 |
박순발 충남대 고고학과 명예교수는 "규모가 상당히 큰 산성이면서 거란과 몽고의 침입 때 양민들이 계룡산으로 대피하던 용도로 성벽뿐만 아니라 성 안에 건물지 등 조사할 게 많다"라며 "문화재 가치는 이미 충분히 규명되어 행정적 보전 조치가 필요한 때"라고 설명했다.
임병안 기자 victoryl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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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산성이 체계적으로 관리되지 않아 옛 기와 파편이 등산로에 흩어져 등산객들이 탑쌓기 용도로 쓰이고 있다. /사진=임병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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