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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찬 우송대 보건의료경영학과 교수 |
종래에는 의료정책과 같은 전문적 분야는 정부와 전문가들이 결정하고 이끌었다. 하지만 외국의 경우, 최근에는 환자나 시민들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직접 의견을 제시하고 정책에 영향을 미치려는 시도가 늘고 있다. 단순히 제안하거나 항의하는 것을 넘어서, 일상 속에서 스스로의 역할을 돌아보고 바람직한 의료 이용 문화를 함께 만들어가려는 시도들이 나타나고 있다.
일본 효고현 탄바시의 '현립 가시와바라 병원의 소아과를 지키는 모임' 운동은 이런 변화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다. 2007년 가시와바라 병원 소아과 의사 한 명이 과중한 업무에 지쳐 퇴직을 결심하면서 지역 소아·산과 의료의 붕괴가 우려됐다. 외래와 입원 진료는 물론 신생아 진료까지 맡았던 두 명의 의사에게 매주 수차례의 야간 당직은 과중한 부담이었다. 이를 신문사 기자를 통해 처음 접한 어머니들이 중심이 되어 시민 모임을 결성했고, 이들은 단순한 청원을 넘어서 '병원을 편의점처럼 찾는 일을 줄이자'며 진료 이용을 스스로 자제하자는 행동 서명을 전개했다.
"아이를 지키자, 의사 선생님을 지키자"라는 슬로건 아래, '편의점 진료 자제', '주치의 갖기', '감사 표현하기'라는 메시지를 지역사회에 확산시켰고, 이는 시민측이 먼저 제시한 새로운 윤리이자 연대였다. 5만 명이 넘는 서명을 모아 효고현에 제출했지만 당국의 반응은 미온적이였지만, 그들은 우리 손으로 공공병원을 지켜야 한다는 결의로 풀뿌리 운동을 이어갔다. 진료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진료를 줄이겠다'는 시민의 반응은 의료진에 대한 깊은 신뢰와 지역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 운동은 일본 전국적으로 지혜로운 보호자가 되자는 시민 중심의 의료지지 활동이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고 제1회 지역재생대상 준그랑프리를 수상했다.
이러한 시민 주도 운동은 한국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성남시의료원의 운영 사례는 현재 처한 공공병원의 현실을 보여준다. 성남의료원은 2003년 구시가지인 수정구에 있던 종합병원인 인하병원과 성남병원의 폐업에 따른 의료공백을 이유로 시민사회단체들이 주민 발의로 조례 제정에 나서면서 시작됐다. 우여곡절 끝에 2020년 개원한 성남의료원은 개원전에는 시민사회가 참여한 설립추진위원회와 시와 의료원 행정 부문과의 협력이 잘 이뤄졌지만 개원 후에는 의료원 내부의 관리 문제가 노출돼, 현재는 성남시에서는 대학병원 위탁을 보건복지부에 승인 요청된 상태다. 지역주민들은 성남시의료원의 대학병원 위탁에 찬성하는 의견이 과반수를 넘어서지만, 시민단체들은 대학병원 위탁은 공공병원의 고유사업으로서 공공의료사업 활동이 축소될 것으로 우려해 투자 확대를 통한 방치된 시의료원을 정상화하는 것이 먼저라고 반대하고 있다.
2020년 대전시 사회조사에서 대전시민의 84.8%가 대전의료원 건립이 필요하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이러한 대전의료원 건립 지지가 성공적인 운영으로 이어지는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어디서부터 시작될 수 있을까? 지금처럼 시민들이 생활하기 바빠서 주변을 살펴볼 여유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지역 언론, 특히 지방 일간지의 역할이 결정적이다. 앞서 일본의 의료시민 운동도 신문사 기자의 얘기를 전해 들은 주민들을 통해 시작됐다. 지역신문은 시민이 공공의제를 경험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이다. 중도일보와 같은 대전 지역 언론이 시민의 공론장을 여는 주체가 돼야 하며, 꾸준히 깊이 있게 의료와 관련된 기획과 심층기사를 통해 시민이 공론장에서 시민의 목소리를 듣고 내는 것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다.
시민 참여는 단순히 의견을 내는 것이 아니라 '권한'과 '책임'을 공유하는 것이라는 내가 의료 시민단체 활동가에게 들었던 말이 새삼 기억난다. 건립이 확정되고 추진하고 있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난 것이 아니다. /이근찬 우송대 보건의료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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