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양성광 원장 |
그런데, 여전히 30여 평 아파트를 꽉 채운 이 많은 물건을 어찌할까나. 정리하다 보니 까맣게 잊고 있었거나 한번 쓰고 처박아 둔, 언젠간 필요할 것 같아 버리지 못하는 물건이 꽤 많다. 낡은 사진첩, 가족사진과 그림 액자, 하나하나 사 모은 카세트테이프와 CD들, 여행지에서 산 그림엽서와 마그넷 같은 물건들은 추억이 담겨 있어서 차마 못 버리겠다. 그렇다고 마냥 끌고 다닐 수도 없는데….
한쪽 벽면을 꽉 채운 책장과 책들도 이제는 장식장 역할밖에 하지 못한다. 그런데도 가끔 대형서점에 책 구경 가서는 충동적으로 신간 서적을 구입하고 있으니 그래서 짐이 좀처럼 줄지 않나 보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붙는 나잇살도 당최 줄지 않는다. 먹는 것에서 에너지로 소비하고 남으면 살로 비축되는데, 나이가 들면서 신진대사가 떨어지니 먹는 양을 계속 줄여야 그나마 체중이 유지된다. 살림살이도 마찬가지다. 짐을 줄이려면 들이는 것보다 더 많이 내보내야 하는데 쉽지 않다. 분리 배출하는 플라스틱, 비닐, 종이, 고철과 구청에 신고·배출하는 덩치 큰 가전제품, 유리, 도자기 등은 조금만 늦어도 바로 쌓인다. 게다가 어떤 건 용을 써도 분리가 안 되게 붙어 있다. 플라스틱도, 고철도 아니니 할 수 없이 종량제봉투에 넣는데 왠지 나쁜 짓하는 것 같아 기분이 그렇다.
그런데, 우리가 정성껏 분리 배출하는 플라스틱과 의류 등은 우리의 기대처럼 잘 재활용되고 있을까? 정부는 플라스틱의 국내 재활용률이 73%라고 발표하고 있으나, 그린피스는 수출을 제외한 국내 처분은 27%에 불과하다고 추정한다. 코로나19로 수출이 막혔을 때 플라스틱 쓰레기 대란이 일어난 것이 이를 방증한다. 얼마 전 시청한 다큐멘터리는 이렇게 수출된 플라스틱의 대부분이 수입국에서 불법 투기되거나 소각 처리돼 환경 문제를 일으킨다고 고발한다. 재활용인 줄 알았는데, 그저 가난한 이웃 국가에 버리고 있던 것이었다.
의류 문제는 더 심각하다. 최근 온라인 유통업체 알리와 테무 등이 싼 가격과 다양한 상품으로 의류 과소비를 촉진하고 있다. 요즘 MZ들은 한번 입고 인생샷을 찍으면 그 옷을 다시 못 입겠다고 버린단다. 알고리즘과 쇼핑몰 추천 기능이 자꾸 신상을 사라고 꼬드기니 유행은 일주일 단위로 바뀐다. 과소비한 옷이 꺼림칙하나 이를 달래주는 것이 의류수거함이다. 거의 새 옷 수준이니 누군가 잘 입겠지, 하고 수거함에 투입하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런데, 중고 의류 최대 수입국 가나의 수도 아크라에서는 전 세계에서 버려지는 옷들이 쌓여 산더미를 이뤄 태우고 태워도 처리할 수 없어서 결국 바다에 버려진다. 잠깐 입고 버리는 울트라 패스트 패션 옷들이 유행하면서 도저히 쓸 수 없는 수준의 옷들이 많이 수입되고, 값싸게 유통되다 버려진다. 헌 옷은 염료와 미세플라스틱으로 분해돼 바다를 떠돌다가 물고기에 축적돼 원양어선에 의해 내 식탁에 오른다. 어떤 때는 썩지 않는 쓰레기가 돼 조류를 타고 우리 해변으로 돌아온다. 의류 쓰레기를 가장 많이 수출하는 나라 5위인 우리나라에 살면서 분리 배출했으니 재순환시켰다고 마음의 평안을 맘껏 누릴 수는 없을 거다.
우리나라에선 중고의류 수출이 막히면 처리하는 프로세스가 없다. 중고의류의 5%만 구제시장 등 국내에서 재사용되니 수출이 막힌다면 아크라에서 생기는 일이 서울 강남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 영국 런던과 미국 뉴욕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유럽 사람 1명당 매년 12㎏의 섬유 폐기물을 버린다. '공수래공수거'의 현대적 의미는 각자 적게 소비해 지구 전체의 순환을 줄이라는 거다. 버리기가 어려우니 그만 더해야 살도, 짐도 빠지고, 지구도 숨을 쉰다. 자원순환사회를 꿈꾼다면 새로 더하지 말고, 적게 사용하는 미니멀리즘이 필요하다. /양성광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