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봄볕에 점심 식곤증으로 비몽사몽을 헤매는데, 생뚱맞은 호출 전화가 왔다. 내가 천리포수목원에 와 있는줄 어떻게 알았는지 다짜고짜로 여섯시 반까지 만리포에 있는 한 카페로 오란다. 상대는 몇해 전 구례로 낙향한 대금연주가 김평부선생이다. 만난지 하도 오래라서 열 일 제치고 현장에 갔더니 그를 기다리는 낯선 사람이 먼저 와 있었다. 이어서 또 다른 사람이 오고…. 모인 사람은 스님과 여성 두명을 포함화여 모두 일곱명으로 대부분 이날 처음 만나는 초면 사이였다.
소개팅인가? 저윽이 의아해 하며 기품이 있어보이는 한 여성에게로 눈길을 돌렸더니 평부선생이 눈치를 채고 손사래를 친다. 더욱 의아한 것은 예약된 방이 방음장치가 잘 돼 있고 밤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오는 3층 독실이라는 점이었다. 간단한 식사가 끝난 뒤에 내 행색과 몰골이 아무래도 퇴짜감 같아서 물러나려 했더니 주빈인듯한 중년 신사가 '2차'가 있다며 만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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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상을 물린 뒤 벌어진 풍악잔치는 정말 흥겨웠다. 발전 기술자인 유 소장이 부르는 '사철가'로 시작된 청중없는 음악회는 사물놀이, 대금연주, 비나리, 천수바라(불교음악) 등으로 두 시간동안 이어졌다. 내가 놀란 것은 출연진은 각자 초면인데도, 박수쳐 줄 청중이 없는데도, 화음과 박자가 척척 들어맞아 음률에 둔감한 나까지 들썩이게했다는 사실이다.
막판에 북 장고 꽹과리 대금 4중주가 연주될 때는 흥이 극에 달했다. 모르긴 해도 우리 가락 국악은 연주자는 물론, 관객의 마음까지 통합시키는 마력이 있는 것 같다. 비록 초봄의 꿈 한마당처럼 일과성으로 끝나버린 작은 이벤트였으나 이 분열의 시대를 종식시킬 국론 통합의 방법이 무엇일지 생각하게 하는 즉흥 음악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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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준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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