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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철 변호사 |
그런데, 최근 서울행정법원은 배달시간을 맞추기 위해 오토바이를 급히 몰다가 신호를 위반하여 교통사고로 사망한 배달기사에 대해 업무상 재해를 인정하였다. 해당사건의 A씨는 2023년 9월경 배달할 음식을 가지러 오토바이로 이동하던 중 교차로에서 신호를 위반해 직진하다 맞은편에서 좌회전하던 차량과 부딪혀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사망했다. 이에 A씨의 유족은 업무상 재해라며 유족급여 및 장례비 지급 청구를 했지만 근로복지공단은 '신호위반이라는 일방적 중과실로 인한 것으로, 업무상 재해로 볼 수 없다'며 이를 거부했고, 유족은 이러한 처분이 부당하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이 사건에서 서울행정법원은 A씨의 사망이 업무상 재해 인정에서 제외되는 '범죄행위'에서 발생한 사고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망인은 이 사건 사고 당일 32회의 배달 업무를 수행했다. 사고 당시 육체적·정신적 피로가 상당히 누적된 상태였을 것으로 추단할 수 있고, 이에 순간적인 집중력 또는 판단력이 저하된 상태에서 신호위반을 했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판단하면서 "따라서 망인의 신호위반이 이 사건 사고 발생의 주된 원인이라는 사정만을 들어 이 사건 사고가 업무수행을 위한 운전 과정에서 통상 수반되는 위험의 범위를 벗어났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이러한 판단의 배경이 되는 2022년 대법원 판결이 있어 이를 소개한다. 대기업 하청업체 근로자 B씨는 2019년 12월 업무용 차량을 이용해 교육에 참석했다가 근무지로 복귀하던 중 중앙선을 침범해 마주 오던 트럭과 정면충돌했고, 이 사고로 B씨가 사망했다. B씨의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 및 장의비 지급청구를 했으나 거부되었다. 법 위반행위로써 범죄행위로 사고가 났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사건에서의 쟁점은 B씨의 사고가 산재보험법에서 말하는 '범죄행위'에 해당하는가였다.
1심은 B씨의 사망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보아 유족의 청구를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타인의 관여나 과실 없이 오로지 근로자가 형사책임을 부담해야 하는 법 위반행위를 했다는 사정만으로 곧바로 '범죄행위'에 해당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항소심은 이를 뒤집었다. 중앙선 침범행위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12대 중과실행위이며 도로교통법에 의해 처벌되는 범죄행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B씨가 중앙선을 침범하지 않았더라면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운전자의 주의의무를 게을리한 중대한 과실에 해당한다"고 봤다.
그런데, 대법원은 다시 항소심을 뒤집었다. 통상적으로 수반되는 '위험의 범위' 내에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면 중앙선 침범으로 사고가 났더라도 업무상 재해가 아니라고 섣불리 단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사고의 경위와 양상, 운전 능력 같은 사고 발생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출장 업무를 마치고 돌아오던 중 사고가 발생한 점, 중앙선 침범 원인이 규명되지 않은 점, 음주운전이 아니었고 졸음운전으로 추정된 점, 운전면허 취득 후 교통사고 이력이 없는 점 등의 이유를 들어 "B씨 사고는 업무수행을 위한 운전 과정에서 통상 수반되는 위험의 범위 내에 있는 것으로 볼 여지가 크다"고 판단했다.
위 대법원 이후 근로자의 중과실에 의한 교통사고라 하더라도 그 위반 경위나 통상 수반되는 위험의 범위 내 인지에 따라 업무상재해가 인정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구체적인 사실관계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신동철 법무법인 유앤아이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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