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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석 소설가 |
작년 4월에 개봉한 영화 '시빌 워 : 분열의 시대'는 딱 이런 상황에 걸맞은 영화이다. 극단적 분열로 역사상 최악의 내전이 벌어진 미국을 배경으로 한다. 영화에서는 보수와 진보의 대립을 꼭 집어서 다루지는 않는다. 다만 극단적 대립의 결과로 벌어진 실제 내전 상황을 다룬다. 세상은 둘로 갈라졌고, 당신은 어느 편인가를 물으며 내 편이 아니라면 바로 적이 되는 숨 막히는 현실을 그리고 있다. 어떤 평론가는 '(표를)찍다와 (총을)쏘다가 영어로 'shoot'이라는 사실이 떠오르는 격렬한 딜레마'라는 평을 남겼다.
민주주의는 삼권분립이라는 헌법을 수호하고, 투표로서 서로의 의견을 표현하고 결정하는 구조이다. 여기에 표가 아닌 총이 동원된다면 당연히 민주주의는 파괴되고 독재국가가 될 것이다. 이런 당연한 상식이 극단적 분열로 이해 불가 수준이 된다면 지금까지 쌓아온 민주주의를 향한 길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
'국가는 어떻게 무너지는가'(피터 터친 저)란 책을 보면 왜 모든 국가와 사회는 반복적인 정치적 불안정에 시달리고, 어떤 사회는 내전, 혁명의 심각한 수준의 혼란을 겪으며 명멸하는지 나폴레옹 이후 현대까지 약 300건의 위기 사례를 분석해서 다루고 있다. 이 책에서는 네 가지 요인이 반복적인 정치적 불안정을 가져온다고 말한다. 대중의 궁핍화, 엘리트 내부 충돌로 이어지는 엘리트 과잉생산, 쇠약한 재정 건전성과 국가 기관에 대한 신뢰도 약화, 지정학적 요인이다. 여기서 중요하게 다루는 것은 좌우의 대립도 아닌 바로 엘리트 집단의 과잉생산이다. 어쩌면 보수나 진보 같은 가치를 논하는 대립은 표면적인 현상이고, 그 이면에는 엘리트 집단 간의 권력투쟁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한국은 대표적으로 의사와 검사로 대변되는 엘리트 집단이 있고, 고등학생의 90%가 대학에 진학하는 고등교육의 국가이다. 엘리트를 위한 고급 일자리는 한정되어 있고 여기에서 탈락한 사람들의 불평등 의식이나 갈등은 계속 고조되어 왔다. 특히 서울의 집값은 새로 중산층에 진입하는 젊은 세대가 월급으로 감당할 수준이 아니다. 경제 수준으로 보면 세계 10위 국가이지만 상대적 궁핍화가 심화되고 있다. 이런 내부적 불만이 계엄과 대통령 탄핵사태를 맞이하면서 삼권분립과 심판의 보루라고 할 수 있는 법원의 권위마저 무너뜨리고 있다. 아마 헌재가 탄핵을 인용하든 기각하든 그 내홍은 상당할 것이다.
나는 이런 극단적 정치의 완충제로 중도정당의 탄생을 오랫동안 염원해 왔다. 네편, 내편으로 가르는 양당정치는 필연적으로 정치적 편향을 가져올 수 밖에 없다. 어느 한쪽을 택해야 살아남기 때문이다. 이념 대립보다는 피터 터친의 분석처럼 4가지 국가의 쇠락 요인을 잘 이해하고, 그 요인을 극복하는 제도 개혁에 집중하는 중도정당이 나온다면 한국은 새로운 희망 정치로 가지 않을까 한다. 이번 탄핵정국 이후에 새로운 정치적 물결이 흘러나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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