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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지 사회과학부 차장 |
한 달간 내가 가장 많이 내뱉은 단어 중에 키워드를 꼽으라면 단연 '부탁' 이다. 듣기만 해도 부담스러운 이 단어를 요즘 밥먹 듯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며 흠칫 놀란다. 시작에는 늦은 때가 없다고 하지만서도 이건 뭐 늦어도 한참 늦었다.
유독 뒷북이 취미였던 과거를 생각해본다. 남들이 한창 열광하던 스타에게 심드렁하다 뒤늦게 빠진다던가, 종영된 지 한참이나 된 인기 드라마를 날밤 새며 몰아보고, 한물간 패션이나 인테리어에 꽂혀 심취하기도 했다.
20년 가까이 몰두해온 애증의 신문 편집을 뒤로한 채 취재 현장에 발을 담그게 된 것도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하던 일' 하며 숙련도를 높여야 적합한 나이에 취재파트로의 전향은 큰 용기가 필요했다. 그렇다고 또 거창한 계획이나 포부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한번쯤 도전해보고 싶었던 분야로의 시작은 더 늦기 전 지금이 가장 적절했다.
A4 사이즈 종이 속 글로 만나온 취재 현장을 직접 발로 뛰어보니 예상 못한 어려움도 많았지만 편집과는 또 다른 '날 것' 그대로의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편집기자의 가장 큰 약점(장점이기도 한)이라면 바로 '현장에 없었다는 것'이 아닌가. 허나 지금 나는 현장의 최일선에서 사건을 보고 쓰고 전하며, 3인칭 시점에선 경험하지 못했던 애로사항이나 속사정들을 절절히 체험 중이다.
사회부 발령 첫날, 내 일복을 증명이라도 하듯 지역에 큰 사건이 터졌다. 분위기를 익힐 새도 없이 투입된 현장은 영하권 날씨 때문인지, 심리적 위축 때문인지 유독 춥고 매서웠으며 그리고 또 배고팠다. 정신없이 시민 인터뷰를 하고 경찰의 브리핑을 실시간으로 받아 적으며 치른 '작은 신고식'에 동료들은 "몰아 배우는 게 났다"며 위로해주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왜 필드에 나와 고생을 자처하냐는 주변의 한결같은 반응을 웃어넘긴 이유는 결과야 어떻든 이번 뒷북이 개인적 성장과 삶의 변화를 가져다 줄 것이라는 믿음 하나였다.
또 하나, 요즘 내가 하고 있는 부탁의 단어만큼이나 넘치도록 많은 격려와 응원, 한발 한발 취재 걸음마를 떼게 해준 선후배님들의 살뜰한 가르침도 나를 하루하루 버티게 해준 원동력이었다.
벽을 무너뜨리면 다리가 된다는 말이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이 때문에, 혹은 다른 이유로 새로운 도전을 망설이는 사람이 있다면 조심스럽게 권하고 싶다. 심장을 뛰게 할 일이라면 뒷북 도전도 해볼 만하지 않겠냐고.
아직도 갈 길이 구만리인 중고 신입기자는 후배들의 뒤를 부지런히 따라가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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