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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胎)는 뱃속 아기의 성장에 필요한 영양소를 공급해 주는 임부의 장기(臟器)다.
조선 왕실은 왕족이 태어나면 태를 잘라 명당이나 길지에 묻고 '(胎室·아기씨태실)'을 조성한 뒤 주인이 왕위에 오르면 석물(石物)을 단장(가봉태실)해 관리했다.<사진>
공주시 태봉동의 조선 19대 임금 숙종 태실(1683년)도 그런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후 세월이 흐르면서 원형이 크게 상실됐지만 시가 2021년부터 석물과 부재를 수습하는 등 상당한 성과를 내며 원형 복원 사업을 순조롭게 진행하고 있다.
18일 임승수 문화유산과장은 "시와 충남역사문화연구원이 손잡고 '숙종 태실 복원고증연구'를 진행해 석물 일부를 확인·수습하는 성과를 얻었다"며 "아직 찾지 못한 중동석·개첨석·주석 등에 대해서도 추가 발굴 노력을 계속해 가능한 원형에 가깝게 복원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숙종 태실에는 망실된 부재와 별도로 가봉태실비·아기씨태실비 및 사방석이 원형 그대로 남아있다.
귀부 위에 이수를 갖춘 형태의 태실비 비신(碑身)에는 '주상전하태실'이라 적혀있다. 1992년 충남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됐다.
시가 현장 주변에서 수습한 석물 약 40여점(전석·상석·동자주석·횡중석)은 충남역사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태항아리는 일제 강점기에 경기도 고양시 서삼릉(조선왕릉군)으로 옮겨진 후 현재 태지석과 함께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보관·관리중이다.
태실의 양식은 조선 중기부터 후기까지 팔각의 평면에 전석과 상석을 깔아 갖추고 그 위에 동자주석과 주석을 세워 횡죽석을 받친 후 돌난간을 댄 형태다.
팔각 평면의 중앙에는 사각형의 사방석을 놓고 중동석과 개첨석을 올려 가봉태실의 면모를 갖추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시 방성연 학예연구사는 "수습한 석물을 보존처리한 뒤 3D 스캔을 통해 숙종 태실 모형을 제작 전시할 예정"이라며 "태실의 발견 성과와 의미를 홍보하고 역사적 의미을 살피는 특별강연도 준비중"이라고 밝혔다.
시는 석물 수습과 부지매입 등 기본 절차가 마무리 되면 전문가 의견을 들어 태실의 입체 원형을 설계하고 이를 바탕으로 태실 복원을 마칠 예정이다.
공주=박종구 기자 pjk00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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