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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인섭 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 |
그런데 판사님은 왜 밤안개 자욱하게 낀 새벽녘에 현장검증을 실시하였을까.
판사님은 부임 첫날 새벽에 강둑에 불러서 미안하다며, 이 사건의 경우 강둑 건너편에서 특별사법경찰관인 단속반원들이 밤안개 사이로 피고인을 비롯한 무리가 불법채취작업 하는 것을 목격했다고 주장하고 있다면서, 이 사건 발생 일자와 시각, 그리고 밤안개에 이르기까지 사건 당시와 최대한 비슷한 환경에서 현장검증하기로 하고 어렵게 잡은 날이라서 어쩔 수 없었다고 설명해 주셨다. 판사님[재판정을 사건 현장으로 옮겨 개정한 것이니 판사님보다는 재판장님이라고 호칭하는 게 정확해 보임]의 진행으로 검사님이 의견을 제시하였는데, 검사님은 "방금 전 다 같이 보셨다시피, 단독 범행은 불가합니다" 정도로 정리하셨던 것 같다. 한편 검증 시에 현장에서 소송대리인이 검증대상에 관하여 진술할 필요가 있는데 주장할 내용이 많거나 정리하기 어려운 경우 주장요지서 등을 검증 시 제출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 사건은 변호인 진술을 길게 한다고 유리한 상황이 아닌 것으로 보여서 필자는 짧고 임팩트 있게 "보시다시피 피고인은 체구가 장대하고 기운이 좋은 데다가 다슬기 채취를 장기간 해온지라 휴식시간을 적절히 가지면서 혼자서 충분히 작업 할 수 있다" 정도로 의견을 진술하였다. 그날 강 건너편에서 일단의 무리가 불빛을 비추면서 이쪽을 향해 말을 걸도록 했었는지는 좀 오래된 사건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아마도 "만약 저편에 단속반원들이 있었다면 단속반원들이 피고인들을 볼 수 있었는지, 피고인들은 단속반원들을 볼 수 있었는지"에 대해 다들 가정해보고 의견을 진술했던 것 같다. 그렇게 추억 많은 법무관 생활의 첫날이 시작되었다.
위 사건은 결국 피고인에게 유죄판결이 선고되었다. 피고인은 끝까지 억울하다고 주장하였고, 필자도 최대한 강변하였다. 그러나 판사님은 "지금이야 피고인이 다른 친구들에 대해 약간의 돈을 받고 의리를 지켜준다 생각할지 몰라도 그런 관계가 얼마나 지속할지 잘 생각해보라"며 양형 이유를 밝혔다. 진실은 누구도 알 수 없다. 판사님은 경제범죄의 경우 엄벌을 하지 않으면 재범할 우려가 매우 크다며 생각보다 쎈 양형을 하였다.
위 사건은 개인적으로나 법리적으로나 여러 가지로 기억에 남는다. 앞으로 불필요한 소송절차가 줄어들고 판사가 충원되어 여건이 개선되면 현장검증이 꼭 필요한 사건에서 검증이 활성화되길 기대해본다. 윤인섭 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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