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나리자' 그림이 유명해진 이유는 그 그림이 없어져 찾느라 소문냈기 때문이다. 1900년 초 '빈첸초 페루지아'라는 이탈리아 사람이 "다빈치가 이탈리아 사람이니 이 그림은 당연히 이탈리아로 가져가야 한다." 라는 의욕으로 다빈치의 고향으로 가져갔기 때문이다.
얼마 후 페루지아가 체포되고 '모나리자'는 다시 루브르 박물관으로 돌아왔다 한다.
이 밖에도 세계 각국에는 유명한 그림들이 많이 있는데 피카소를 비롯하여 프라도미술관에 전시돼 있는 '옷을 벗은 마야'와 '알바백작부인을 그린 '고야'도 유명한 작가로 알려져 있다.
너스레를 그만 떨고 본론으로 돌아가자.
2025년 3월 7일.
서양화가로 이름이 알려진 류영신 작가의 소개로 금강문화회관 세종보 종합갤러리를 찾았다. 복숭아 작가로 알려진 서양화가 박경희 작가의 열다섯 번째 개인전이 열리고 있었다.
박경희 작가를 보는 순간 벽면에 걸려있는 아름다운 복숭아 그림처럼 볼그스레한 얼굴이 크로즈업 되어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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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속에서도 향내나는 박경희 작가가 그린 세종 특산물 복숭아 그림 |
이처럼 아름다움은 사람의 눈을 끌게한다. 더구나 이 고장의 특산물인 복숭아를 닮은 모습이었기에 더욱 그러했으리라.
박경희 작가는 '생명의 영속'이란 테마로 복숭아 작품을 비롯해 30여 점의 작품을 전시햇다.
박 작가가 그린 복숭아 그림은 민화, 한국화에 주로 등장하는데 '장수'를 의미하며 신선의 과일이라고 불리우고 있다. 다른 화가들이 그린 복숭아 그림에는 주로 십장생도나 신선 그림속에 구름과 함께, 학과 함께 등장하는데 박 작가는 오로지 복숭아만을 그린 게 특징이다.
왜이렇게 복숭아만을 그렸느냐고 묻지도 않았다.
이 고장 세종(특히 조치원)의 특산물이기 때문에 복숭아만을 그렸을 것이다.
복숭아처럼 아름답게 보이는 박경희 작가는 사실주의 화법으로 과거의 기억을 재현하고, 몽환적이고 흐릿한 유년기 시절의 감정을 표현한 작품들을 그렸다 한다. 작품 소재인 복숭아는 유년 시절의 아름다운 기억을 회고하는 매개체이자 그리움의 상징적 대상이고 따라서 내고장 특산물을 널리 홍보하기 위한 차원에서 복숭아만을 주로 그렸다 한다.
그의 작품을 대하면 강렬하면서도 안정된 느낌이 든다. 열정과 활력을 상징하는 붉은 색채의 향연은 어떠한 도전 앞에서 망설이는 우리에게 걱정도 사라지게 만들어 주는 신비한 용기를 선사한다.
박 작가는 "사실적 재현과 초현실주의 화법을 통해 복숭아과수원에서 보낸 유년기 시절의 행복한 기억을 미학적으로 담아냈다"며 "살아가다 보면 어떤 사건이나 계기로 행복을 잃게 되고 이를 되찾기 위한 방법들을 갈구하게 된다"고 했다. 따라서 더불어 '행복'이란 원래 우리 마음 속에 존재하며, 대단한 것이 아니라 걱정 없이 살았던 유년기의 평범한 일상과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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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한 박경희 작가 |
현재, 충남대학교 출강(특강 2D그래픽 아트상품제작, 실크스크린), 충남대평생교육원 출강(실크스크린&목판화), 한국미술협회, 대전미술협회, 창작미술협회, 시나브로 충원전, 이코노텍스트회, 대전국제교류회, 여성특별위원회, 대전가톨릭미술가회, 대전광역시미술대전 초대작가, 보문미술대전 초대작가 등으로 활동하며, '푸른연꽃목판화회' 회장, '대전목판화연맹회' 회장을 맡고 있다.
마무리를 하자.
세종에서 태어나 복숭아를 먹으며 자랐기에 그의 작품속에 도취되다 보면 작품 속에서도 복숭아 특유의 향이 배어 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고대 중국에서 복숭아는 귀중한 과일이었고, 한대 이후에는 귀신을 쫒거나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로 쓰였다. 그러다가 송대 이후에는 복숭아가 지니는 아름다움 때문에 창녀로 비견되기도 했지만 오랜 역사를 거치면서 사람과 애환을 함께 하며 문화적 의미를 더하여왓던 것이다.
사람들이 복숭아를 심는 이유는 당연히 실용적인 목적에서 출발하였다. <한시외전>(漢詩外傳)에 보면 "봄의 복숭아나무와 오얏나무는 여름에는 그늘을 만들고 가을에는 열매를 맺는다"고 했다.
그래서 말이다.
세종에 있는 여러 기관에서는 박경희 작가가 정성을 기울여 그린, 그래서 작품 속에서도 향내가 나는 이 그림들을 한 폭씩 걸어두는 게 어떠할까 권해보는 것이다. '복숭아 축제'에 열을 올리며 웃는 얼굴을 할 때 이 그림도 한몫하게 될 것이고 기관장으로서의 이미지가 확실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김용복/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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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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