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대전 3·8민주의거 시위에 참여한 대전고 학생 2명의 민주화 활동을 증명하는 사진 자료가 발견돼 국가유공자 추가 인정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폭력을 행사하는 경찰을 피해 달아나는 학생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으로, 교복의 명찰을 확대해 당시 고교 1·2학년생인 권영우(41회)씨와 故 이해남(40회)씨 이름을 확인하고 학우들의 진술을 확보했다.
6일 3·8민주의거기념사업회에 따르면 4·19 국가 유공자로 인정된 3·8의거자는 단 11명이다. 그 중 6명은 신문 자료 속 이름이 발견돼 지난해에서야 국가유공자에 등재됐다. 그간 기념사업회는 유공자 발굴 작업을 펼쳐 수차례 상신하는 등 노력을 펼쳐왔지만, 뒷받침할만한 증거 자료가 부족한 이유로 매번 추가 등재에 탈락했다. 국가보훈부의 유공자 지정 기준은 가까운 관계인 사람의 '인우증명' 보다는 사진과 의료기록, 신문기사 등 물적 증거자료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확인된 사진 속 명찰의 이름 석 자는 민주의거 활동에 대한 명확한 증거로서 현재 지정된 11명 유공자에 이어 추가 지정될 수 있다는 기대감도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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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장면 박사 정견발표회가 열린 대전 공설운동장으로 향하던 학생들이 경찰에 쫓겨 논두렁에 빠지는 모습. 권영우씨가 맨 앞에 서 있다. 출처=4월혁명청사 |
그는 "곤봉을 휘두르는 경찰의 진압에 다친 사람도 있고, 경찰을 피해 둑길을 달리다 논두렁 분뇨구덩이에 여럿 빠지기도 했다"라며 "그 당시엔 사진이 찍힌 줄도 몰랐는데, 한참 후에 동기들한테 연락을 받고서야 사진을 찾아봤는데 제 모습이 분명했다"라고 전했다.
그는 지지부진한 국가유공자 지정과 관련해 "국가보훈부에 공적조사서를 두 번이나 제출했지만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다"라며 "당시 다친 선후배들이 다닌 병원은 문을 닫아 남은 진료기록도 없고, 지금처럼 영상이 촬영되던 때도 아닌데 명백한 사진이 있음에도 인정되지 못한 것은 무척 아쉬운 일"이라며 민주의거 활동에 관한 지역사회 관심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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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3월 9일 대흥동·문창동 골목길에서 학생들이 무장경찰에 진압되는 모습. 맨 앞이 이해남씨. 출처=대전일보 |
이영조 3·8민주의거기념사업회 사무총장은 "현재 보훈부 국가유공자 등재 신청이 매년 정기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상시 접수하는 체계로, 더 늦기 전에 숨은 증거자료를 발굴하고 체계화하는 준비가 필요하다"며 "당시 민주의거에 참여하고도 데모에 참여했다는 자책감에 이를 숨기는 분들도 있는데, 그들의 노력과 헌신을 하루빨리 국가에서 인정받아 명예롭게 지내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은지 기자 lalaej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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