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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완 한국원자력연구원 경제성분석실 선임연구원 |
전문가들은 금값 상승 배경으로 국제 정세 불안과 안전자산 선호 현상을 꼽는다. 경제가 휘청이면 귀금속 중 압도적 존재감을 지닌 금에 자금이 몰리기 마련이다. 이런 상황을 보면 미국 서부 개척시대의 골드러시가 떠오른다. 직접 금광을 찾으러 떠나고 싶은 충동이 드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요즘 다이아몬드는 인공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는데, 랩 다이아몬드(lab diamond)라는 이름으로 장신구 시장에 꽤 널리 퍼져 있다. 그렇다면 눈부신 기술 발전을 이루고 있는 지금, 금도 실험실에서 뚝딱 만들 수 없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가능하다. 하지만 그 이야기는 조금 뒤에 하도록 하자.
금을 만드는 마법이라 불리는 기술, 바로 연금술이다. 연금술의 역사는 고대 이집트, 아니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설이 있다. 납과 같은 흔한 금속을 금으로 바꾸려는 시도는 숱하게 있었지만, 하나같이 실패했다. 그래도 이 과정을 통해 학문으로서 화학이 발전했다니, 인간의 집념이 결국 현대 과학의 기반을 닦았다는 점만은 부인하기 어렵다. 실제 연금술을 뜻하는 영어 단어 alchemy가 화학을 뜻하는 chemistry의 어원이라고 한다.
인간이 이렇게까지 금에 집착한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역시 금에서 느껴지는 영롱함이 아닐까 싶다. 반짝이는 빛을 영원히 잃지 않는 신비로움은 금의 화학적 안정성 덕분이다. 물이나 공기와 거의 반응하지 않아 빛바래거나 부식되지 않는다.
그리고 세공하기도 쉬워 복잡하고 화려한 문양을 내기에 적격이다. 덕분에 고대부터 왕관, 보석 등 장신구에 필수 재료가 되어왔다. 최근엔 금을 극도로 얇게 펴서 식용으로도 사용한다. 하지만 몸에 흡수되지 않고 배출되니 황금똥을 만드는 호사스러운 장식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현대에서 진짜로 연금술을 가능케 하는 기술은 무엇일까? 답은 바로 입자가속기(particle accelerator)다. 입자가속기란 수소나 헬륨 같은 원자를 초고속으로 가속해 총알처럼 발사하는 장치라고 생각하면 쉽다. 어떤 물질을 과녁처럼 세워두고 입자를 쏘면 원자핵이 맞아 깨지면서 새로운 물질이 생긴다. 언뜻 보면 게임 속 SF 무기 같지만, 실제로 가능한 이야기다.
노벨화학상 수상자 글렌 시보그(Glenn Theodore Seaborg)가 이를 실험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어느 날 비스무트 금속을 입자가속기에 넣고 고에너지 입자를 쏘았다. 그러자 비스무트 원자핵 일부가 떨어져 나가면서 금 원자로 변해버린 것이다. 연금술이 현실이 된 순간이었다. 그렇다면 이 기술로 시보그는 엄청난 부를 쌓았을까? 현실은 전혀 달랐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입자가속기를 돌리는 데 드는 비용이 시간당 5000달러다. 금 1온스(약 28g)를 생산하려면 자그마치 1000조 달러가 들어간다."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다. 기술적으로는 금을 만드는 일이 가능할지 몰라도, 경제성이 전혀 없으니 사실상 무의미한 시도라는 얘기다.
자연산 다이아몬드는 이미 인공 다이아몬드에 왕좌를 내줄 위기에 놓였다는 말이 나온다. 실험실 다이아몬드가 품질도 뛰어나고 값도 훨씬 저렴해 장신구 시장에서 점차 인기를 얻고 있으니 말이다. 반면 금은 아직까지 저렴한 비용으로 흉내 내기가 불가능하다. 언젠가 머잖은 미래에 인공 금이 실제 유통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은 좀처럼 보기 힘들 것이다. 그럼에도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는 사실은 왠지 모를 설렘을 준다. 인간의 상상력은 늘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냈기 때문이다. 오늘도 연금술을 꿈꾸는 이들의 상상력이 마냥 허무맹랑해 보이지만은 않는다. 조재완 한국원자력연구원 경제성분석실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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