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人 칼럼] 눈의 고통

  • 오피니언
  • 문화人 칼럼

[문화人 칼럼] 눈의 고통

김홍진 한남대 교수.문학평론가

  • 승인 2025-03-05 16:54
  • 신문게재 2025-03-06 19면
  • 김지윤 기자김지윤 기자
2025012201001585100063131
김홍진 교수
보들레르의 『악의 꽃』 가운데 연작시 「환영」의 '어둠' 편에서처럼 근대 이후 예술가는 신적 창조성을 부여받은 축복과 은총 대신 "조롱하는 신의 강요"로 인해 "어둠의 화폭 위에 그림 그리는 화가"나 "음산한 식욕을 가진 요리사"로서 "내가 내 심장을 끓여 먹"을 수밖에 없는 저주받은 자기 존재성을 승인할 수밖에 없다. 현대 예술에서 시인이나 예술가는 마치 보들레르가 마주한 "어둡고 동시에 빛을 발하는 여인" 앞에 선 것처럼 '어둠'의 세계로 들어서면서 진정한 '빛'의 세계를 꿈꿀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해 있다.

시인은 세계와 갈등하고 불화한다. 근대 이후의 시인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그랬고, 또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세계와의 불화에서 시인은 탈주와 이탈을 꿈꾸고 현실 저 너머 피안을 동경한다. 미지의 꿈과 동경을 포기한 자는 진정한 예술가나 시인이 될 수 없다. 아도르노의 표현처럼 예술은 세계의 모든 어둠과 죄를 자신의 내부에서 떠맡으면서 부정적 경험 세계가 변화되었으면 하는 희망을 말없이 말한다고 했을 때, 시인의 운명도 여기에서 예외가 아니다. 이럴 때 시인은 현실로부터 탈주하여 망명정부를 차리고, 지금 여기를 지배하는 문법을 대체할 문법을 찾아 나선다. 예술의 새로움은 탈영토화에 있다.

근대 이후 시인이나 예술가는 늘 고통스럽고 불행한 운명의 초상을 하고 있다. 그들의 운명은 거대한 날개로 푸른 바다 위를 활공할 때는 우아하지만 갑판 위에선 선원들에게 조롱받는 보들레르의 '알바트로스'처럼 비극적이다. "내가 내 심장을 끓여 먹"으며 "어둡고 동시에 빛을 발하는 여인"을 환시할 수밖에 없는 저주받은 운명의 존재이다. 말하자면 시인이나 예술가는 현실적 조건들과 생래적으로 불화하며 불안하게 뒤뚱거리는 자이다. 그들은 주어진 현실에 만족할 수 없는 결핍된 자아이며, 때문에 비극적 운명의 소유자이다.

다시 아도르노의 표현을 빌어 세계의 불행을 인식하는 데서 시인은 자신의 존재 이유를 확인한다. 그러나 이 말은 미적 경험이란 주체가 자기를 확인하는 만족이나 충족이 아니라 자신의 유한성을 깨닫는다는 뜻이다. 세계가 불러일으키는 전율스러운 충격은 결코 자아의 부분적 충족이 아니며 쾌락과 비슷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충격을 받음으로써 자신의 한계와 유한성을 깨닫게 되는 자아의 소멸에 가깝다. 그들은 항상 세계와 불화하며 긴장한다. 긴장하며 살아 있음을 확인하고, 존재의 떨림을 감각하며, 세계가 변화되었으면 하는 희망의 가능태를 넘본다.



얼마 전 2025년도 대전문화재단 문화예술지원사업 문학 분야 심의에 참여했다. 매해 심의위원으로 참여하면서 느끼는 점은 대전 지역 문단에 원로 문인이 이다지도 많다는 사실에 놀라곤 한다. 청년이나 중견 문인의 수보다 곱절은 많이 지원하기 때문이다. 그건 순전히 문학적 성취나 업적보다 물리적 나이만으로 원로라는 개념을 인식하는 까닭인 것으로 보인다. 외람되지만 원로라는 호칭이 무색하게도 솔직히 다수의 작품은 습작에 가깝거나 창작 행위를 하나의 여기(餘技)로 여기는 듯싶었다.

글쓰기란 백지의 사막, 사막 같은 백지 위에서 고뇌하고 공포에 떨며 좌절하고 실의에 빠져 방황하는 일과 다름없다. 사막 같은 백지의 막막함과 순결한 처녀성에 매번 좌절하고 낙담하고 다시 쓴 결과물이 작품이다. 그러나 글쓰기에 고뇌 어린 표정은 읽을 수 없었고, 대부분 재래의 문법을 자동반복할 뿐이었다. '쉽게 씌어진 시를 부끄러워한' 동주를 무색하게 했으며, '최후의 나'가 내뱉은 고통스러운 언어적 질감을 느낄 수 없었다. 아름다운 여인은 눈을 고통스럽게 하는 법이다.

김홍진 한남대 교수.문학평론가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금강환경청, 자연 복원 현장서 생태체험 참여자 모집
  2. "방심하면 다쳐" 봄철부터 산악사고 증가… 대전서 5년간 구조건수만 829건
  3. [기고]대한민국 지방 혁신 '대전충남특별시'
  4. [썰] 군기 잡는 박정현 민주당 대전시당위원장?
  5. 기후정책 질의에 1명만 답…대전 4·2 보궐선거 후보 2명은 '무심'
  1. 보은지역 보도연맹 희생자 유족에 국가배상 판결 나와
  2. 안전성평가연구소 '국가독성과학연구소'로 새출발… 기관 정체성·비전 재정립
  3. 지명실 여사, 충남대에 3억원 장학금 기부 약속
  4. 재밌고 친근하게 대전교육 소식 알린다… 홍보지원단 '홍당무' 발대
  5. '선배 교사의 노하우 전수' 대전초등수석교사회 인턴교사 역량강화 연수

헤드라인 뉴스


충청 4·2 재·보궐 결전의 날… 아산·당진·대전유성 결과는?

충청 4·2 재·보궐 결전의 날… 아산·당진·대전유성 결과는?

12·3 비상계엄 이후 탄핵정국에서 펼쳐지는 첫 선거인 4·2 재·보궐 선거 날이 밝았다. 충청에선 충남 아산시장과 충남(당진2)·대전(유성2) 광역의원을 뽑아 '미니 지선'으로 불리는 가운데 탄핵정국 속 지역민들의 바닥민심이 어떻게 표출될지 관심을 모은다. 이번 재·보궐에는 충남 아산시장을 포함해 기초단체장 5명, 충남·대전 등 광역의원 8명, 기초의원 9명, 교육감(부산) 1명 등 23명을 선출한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을 놓고 여야 간 진영 대결이 극심해지면서 이번 재·보궐 선거전은 탄핵 이슈가 주를 이뤘다. 재·보궐을 앞..

‘전원일치 의견’이면 이유 요지 먼저 설명한 후 마지막에 ‘주문’
‘전원일치 의견’이면 이유 요지 먼저 설명한 후 마지막에 ‘주문’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과 관련, 헌법재판관들의 의견이 ‘전원일치’이면 이유의 요지를 먼저 설명한 후 마지막에 ‘주문’을 낭독한다. 헌법재판소의 실무지침서인 ‘헌법재판 실무제요’ 명시된 선고 절차다. 재판관들의 의견이 엇갈리면 주문 먼저 읽은 후에 다수와 소수 의견을 설명하는 게 관례지만, 선고 순서는 전적으로 재판부의 재량에 달려있어 바뀔 수 있다. 선고 기일을 4일로 지정하면서 평결 내용의 보안을 위해 선고 전날인 3일 오후 또는 선고 당일 최종 평결, 즉 주문을 확정할 가능성이 크다. 평결은 주심인 정형식 재판관이 의견을..

한국소호은행 컨소시엄 공식 첫 걸음…대전지역 금융 기반 기대
한국소호은행 컨소시엄 공식 첫 걸음…대전지역 금융 기반 기대

제4인터넷전문은행 설립을 추진하는 한국소호은행 컨소시엄(이하 소호은행)이 1일 기자회견을 열고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시했다. 전국 최초의 소상공인 전문은행 역할을 지향하는 소호은행은 향후 대전에 본사를 둔 채 충청권 지방은행의 역할을 일부 수행하며 지역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 소호은행은 이날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소상공인 맞춤형 금융서비스 계획을 발표했다. 컨소시엄을 이끄는 김동호 한국신용데이터(KCD) 대표는 "대한민국 사업장의 절반 이상이 소상공인, 대한민국 경제 활동 인구의 4분의 1이..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시의원 후보자 3인 ‘저를 뽑아주세요’ 대전시의원 후보자 3인 ‘저를 뽑아주세요’

  • 사랑의 재활용 나눔장터 ‘북적북적’ 사랑의 재활용 나눔장터 ‘북적북적’

  • 재·보궐선거 개표소 설치 재·보궐선거 개표소 설치

  • 3색의 봄 3색의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