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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향기 (대전창조미술협회 회장) |
사람의 품격과 마찬가지로 그림에서도 마찬가지로 담담함의 미학이 매우 중요하다. 그림을 그리면서 특이하게 드러내려고 하거나 특이한 색상이나 구도를 사용하면 설득력이 늘어날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가 않다. 예술의 표현에서는 이를 평범보다는 평담(平淡)이라는 용어를 써서 미학적 가치를 표현하는 경우가 많은데, 평담이란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평범하여 싱겁다 정도가 될 것이다. 이것은 담백하여 아무런 맛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보다는 오히려 그 역으로 화려한 수식을 하지 않는 작품에서 스스로 우러나오는 미적 흥취를 나타내는 말이다. 물론 글이나 그림을 담담하고 소박하게 그리면서 그럼으로써 안으로부터 배어 나오는 품격있는 미적 흥취를 이루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평소 담담한 자기 수련과 치장하고 꾸미는 겉치레에 눈길을 주지 않는 일관된 자세가 누적되어야 비로소 자연스럽게 배어 나오는 평범함의 품격이 만들어질 것이다. 물론 평소에 변함없이 이런 태도를 일관되게 견지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보통의 사람들은 남들 앞에서 자신을 내세우고 싶어 하고, 자기를 알아주기를 원하며 그런 마음에서 자꾸 자신을 드러내려하고 꾸미게 된다.
그러나 자신을 내세우거나 과하게 꾸미는 일이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거나 더 멋있게보이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선현들은 잘 깨닫고 있었던 것 같다. 노자 도덕경에는 도(道)는 입밖에 내어 말해도 싱겁고 담백하여 아무런 맛이 없다.(道之出口 淡乎 其無味)는 구절이 있다. 도의 경지에 이르면 입 밖으로 내어 말하는 것이 싱겁고 맛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정말 아무런 흥취가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화려한 수식을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품격이나 미적 흥취가 가득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평담과 유사한 말로 담박미(淡泊美)라는 말도 쓰인다. 담박이란 이미 고려 때부터 인물이나 작품을 평할 때 중요한 덕목으로 이 용어를 사용하였다고 하는데 '생각함에 사특함이 없다'는 의미라고 한다. 쉽게 이야기하면 특별하게 꾸미거나 특이한 생각에 사로잡히지 않는다는 의미일 것이다. 가끔 그림 심사를 하다보면 그리지 않아도 될 대상을 지나치게 설명적으로 그려 넣거나 과도한 색채를 사용하거나 구도를 지나치게 강하게 구성하거나 하는 그림들을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이럴 때 심사위원들의 공통된 평가는 '이것 좀 과하군' 하는 말이다.
그림 그릴 때 물론 이런 유혹을 자주 느끼는 것은 아마도 그림 그리는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공감하는 바 일 듯하다. 무엇인가 조금 더 그려 넣어야 할 듯하고, 무엇인가 강렬하게 드러내야 느낌이 전달될 것 같다. 그리고 다른 작품들보다 더 눈에 띌 것 같다. 이런 유혹을 지속적으로 받게 된다. 그러나 그런 유혹을 물리치고 고요한 자기중심을 잡는 일, 절제하며 필요 이상의 붓을 대지 않는 일, 이것이 아마도 좋은 그림을 그려내는 묵묵한 길일 듯싶다. 감기 끝에 하루 쉬면서 일상의 소중함과 담담함을 생각하게 된 것은 하루 머물며 고요하게 있게 만든 감기의 덕분이기도 하다. 제갈량이 어린 아들에게 주었다는 계자서(戒子書)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담박하지 않으면 뜻을 밝게 가꿀 수 없고, 고요하지 못하면 큰 뜻을 이룰 수 없다."(非淡泊無以明志,非寧靜無以致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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