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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기한 대전대 교수 |
올해는 뱀의 해이지만, 특별히 '푸른 뱀'의 해라고 한다. 을사년(乙巳年)의 천간 '을(乙)'이 오행에서 말하는 나무(木)에 해당하며, 나무는 푸른색이기에 그런 효과를 갖는다는 것이다.
'푸른 뱀'의 상징적 의미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동양이나 우리나라의 경우 뱀은 비교적 긍정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구렁이 각시'의 설화나 남편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구렁이가 되어 약초를 물고 왔다는 각시섬의 전설 등에서 보듯 뱀은 우리에게 친숙한 동물 가운데 하나였다.
하지만 서양의 경우 뱀은 동양과 달리 그렇게 친숙한 동물이 아니었다. 서구에서 뱀의 존재성을 가장 극명하게 말해주는 것은 에덴동산의 신화이다. 하나님의 천지 창조 이후, 지상의 모든 생명체는 에덴 동산이라는 공간에서 평화로운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유토피아적 평화의 세계를 파괴한 것은 잘 알려진 대로 '뱀'과 그것이 벌인 '유혹의 담론'이었다.
하나님은 에덴 동산에서 모든 것을 자유로이 먹고, 마음대로 할 수 있지만, 단 한 가지 해서는 안되는 금지의 규칙을 만들어냈는데, 사과라는 과일을 먹지 말라는 것이었다. 이 과일은 눈이 밝아지는 과일, 선과 악을 구별하는 과일, 흔히 말하는 선악과(善惡果)였다. 만약 인간이 이 소비충동을 이겨냈더라면, 현재와 같은 원죄는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인간에게 에덴 동산이라는 유토피아, 원죄라는 덫을 씌운 것은 바로 '뱀'이었다. 그래서 뱀은 유혹의 상징이 되었거니와 서구 사회나 기독교에서 사악한 동물의 상징이 되었다.
뱀의 신화적 상상력은 이후 동양 사회에서도 빠르게 전파되었고, 그 결과 이제 그것은 동양에서도 그리 긍정적인 동물로 비춰지지 않았다. 유혹의 상징이 되었던 것인데, 이를 가장 잘 대변하는 말이 '꽃뱀'일 것이다.
우리 문학에서 이 '꽃뱀'의 상징을 가장 효과적으로 구현한 시인은 아마도 서정주일 것이다. 그는 자신의 대표작 '화사(花蛇)'를 썼고, 이를 자신의 첫시집(1941)의 제목으로 상정하기도 했다. 서정주가 이 작품을 쓴 동기는 인간은 궁극적으로 유혹하는 존재, 혹은 유혹당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말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그 합당한 근거를 제시하기 위해서 도입한 것이 에덴 동산의 신화에서 벌어진 뱀의 유혹이었다.
서정주 이후 '뱀'의 사악한 상징성은 우리 사회 곳곳에 침투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하나가 욕망의 상징이었는데, 이와 관련된 일화들은 제법 많았다. 비록 오래된 시절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아마도 필자가 중학교 시절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하교 길에 우연히 한 무리의 군중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보았다. 무슨 약을 파는 것 같았다. 그런데, 약을 파는 주체는 목에다 뱀을 두르고 있었고, 병 속의 물을 땅에 조금씩 쏟으면서 남자들의 오줌발은 이렇게 약하면 안 된다고 연신 떠들어내고 있었다. 뱀을 두르고 있어 재미있어 보이긴 했지만, 무슨 약이기에 뱀을 목에 걸쳐야 하는 것인지, 병에 뚝뚝 떨어지는 저 힘없는 물줄기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 이유는 나중에 알았지만.
뱀은 이렇게 우리 사회에서 욕망하는 것의 상징으로 굳어지기 시작했다. 욕망 때문에 인간은 유토피아를 잃었다고 성서는 가르치고 있거니와 다시 그 유토피아로 회귀하기 위해서 인간은 무엇보다 욕망을 다스려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이런 단면은 비단 성서에서만 유효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올해는 뱀의 해이긴 하되 푸른 뱀의 해이다. 욕망이란 붉음이다. 푸른 색은 붉은 것을 중화시키는 기운을 갖고 있다. 그 뜨거운, 빨간 기운을 푸른 색으로 희석시켜 욕망이 절제되는 사회, 그리하여 갈등없는 사회를 기원해보는 것은 어떨까. /송기한 대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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