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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순욱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책임연구원 |
딥시크의 등장은 AI 패권 경쟁의 판도를 바꿀 중요한 신호탄이다. 특히 미국의 강력한 반도체 수출 규제 속에서도 중국이 자체 기술력으로 의미 있는 성과를 내면서, AI 산업의 주도권 경쟁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빅테크에 의해 봉인된 AI 민주화 판도라의 상자가 살짝 열린 것이다. 딥시크 개발에 엔비디아 저사양 AI칩 H800 2048대가 사용됐다고 알려졌다. 딥시크가 H100 5만 대를 보유하고 있다는 설도 있으나 진위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번에 계층적 동적 토큰 관리 기반 메모리 최적화, 양자화 기반 분산 학습 최적화, 다단계 지식 증류 기법 등 LLM 추론 모델 최적화를 위한 비밀 래시피가 공개됐다. 이는 AI 개발에서 최신 반도체 자원의 확보도 중요하지만, 알고리즘 혁신도 핵심적일 수 있음을 일깨우는 계기가 됐다.
딥시크가 세계를 놀라게 한 이유는 단순한 기술적 성과만이 아니다. 이 모델을 개발한 인력의 상당수가 중국 내에서 성장한 AI 엔지니어들이라는 점이 주목받고 있다. 중국은 풍부한 AI 인력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연구개발 체계를 구축했으며, 미국 빅테크 기업들에 비해 제한된 첨단 AI 컴퓨팅 인프라 환경에서도 알고리즘과 모델 효율화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AI 기술 발전을 가속화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특히 딥시크는 LLM의 구조적 비효율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서, 상대적으로 적은 컴퓨팅 자원으로도 최상의 성능을 달성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번 딥시크 쇼크는 한국의 AI 경쟁력 제고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한국은 반도체 산업에서 강점을 보이고 있지만, AI 개발의 핵심 중의 하나인 국가 차원의 AI 컴퓨팅 자원 확보에서는 너무나 뒤처져 있다. 이런 환경에서는 알고리즘 최적화와 모델 효율성 연구에 매진할 우수한 AI 엔지니어 양성이 불가능하다. 더욱이 우수한 인재가 의대로 몰리는 구조적인 문제도 안고 있다. AI 경쟁력은 결국 사람이 좌우한다. 우수한 AI 인재가 지속적으로 양성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뛰어난 반도체 기술을 보유하고 있더라도 AI 산업의 발전은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이제 한국은 반도체 강국을 넘어 AI 강국으로 도약해야 하는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다. 이를 위해서는 두 가지 전략적 방향이 필요하다. 첫째, 최신 AI 슈퍼컴퓨팅 인프라 구축을 서둘러야 한다. 정부는 2027년까지 H100 GPU 3만 개 규모의 국가 AI 슈퍼컴퓨터 구축 계획을 발표했다. 딥시크 사태로 인해 글로벌 AI 경쟁은 더욱 가속화된다. 2027년 AI 3대 강국 진입이라는 탁상공론적인 목표가 아닌, 올해 당장 첨단 GPU 1만 개 규모 AI 인프라 확보·구축·서비스라는 실사구시 정책이 절실하다. 둘째, AI 인재 양성을 위한 국가적 전략이 시급하다. 최근 일본의 사카나AI 스타트업 유치 사례처럼 해외 우수 인재 유치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적절한 인프라와 함께 AI 알고리즘 최적화 연구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는 제도를 추진해야 한다.
중국발 딥시크 출현은 2023년 2월 메타가 공개한 오픈소스 AI 모델 라마가 지핀 AI 기술 민주화 불씨에 기름 부은 역사적인 순간이다. 풍부한 AI 컴퓨팅 자원 하에 열정 있는 AI 엔지니어들이 모델 효율화 기술 개발에 뛰어든다면 한국에서도 제2의 딥시크가 나올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2025년 새해 선물이다. 지금이야말로 새롭게 판이 짜지는 글로벌 AI 산업의 주역으로 자리 잡기 위해 국가 차원의 전략적 결단이 필요한 절체절명의 기회이자 위기다.
황순욱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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