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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 포스터 |
실재계 속 유준의 서사는 개연성을 구축합니다. 그러나 상상계의 정아는 현실의 인과 관계와 개연성의 구애를 받지 않고 나타나고 싶을 때 나타나고 사라지고 싶을 때 사라집니다. 그러니 그녀의 서사는 유준에게도, 관객에게도 비밀이 됩니다. 언어적 내러티브로 포착되지도, 설명되지도 않습니다. 어느 면에서 정아는 의인화된 사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랑이 그러한 까닭입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왜 왔는지 알지 못한 채 다가와 타당성과 인과 관계의 세계를 무너뜨리고 말할 수 없는 매혹과 혼돈으로 우리를 몰아갑니다.
영화의 서사는 이렇게 유준과 정아의 전혀 다른 타임라인을 따라 충돌하기도 하고, 어우러지기도 하면서 팽팽하게, 유연하게, 안온하게, 위태롭게 진행됩니다. 유준의 시간과 정아의 시간이 만나는 곳은 곧 헐리게 될 오래된 피아노 연습실입니다. 그리고 그곳에 음악이 있습니다. 영화는 언어적으로 타당하게, 개연성 있게 설명할 수 없는 이들의 만남을 음악과 공간의 정서를 통해 그려냅니다. 쇼팽과 조르주 상드의 그림이 그곳에 배경으로 걸려 있는 것이 또한 매우 중요합니다.
그들의 사랑과 시간은 파국을 맞습니다.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음악과 정서적 합일은 미래로 향하지 못합니다. 영화는 유준이 정아의 시간 안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끝을 맺습니다. 영화가 예상하는 미래의 시간은 상상계가 아니라 현실 원칙 속에 존재합니다. 영화는 사랑의 환상성과 관련해 미래를 비관적으로 바라봅니다. 대만의 원작 영화를 리메이크한 이 작품은 그러나 그것과 별개로 사랑에 대한 깊은 사유와 아픈 정서적 공감을 하게 합니다. 유준 역의 도경수, 정아 역의 원진아의 연기가 훌륭하고, 음악과 화면 구성이 빼어나게 아름답습니다.
김대중 영화평론가/영화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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