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우영 충남대 명예교수 |
그는 퇴직 무렵, 유등천 상류의 가마소 건너편 산 밑에 뽕나무를 심었다. 열매를 수확하여 오디 와인을 만들어볼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그 목표는 끝내 달성하지 못했다. 와인을 만들지 못한 것이 아니고, 술은 잘 되었는데 숙성 후에도 과실주의 특성이 발현되지 않아서였다. 아무리 좋은 성분이 들어있어도 과실주로서의 향미를 갖추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지 않은가. 최 교수는 고민 끝에 오디로 만든 와인을 식초로 전환하는 작업을 시작하였다.
와인은 그와 늘 가깝게 있었고, 전공 영역에서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호주 유학 시절에는 바로사, 헌터, 야라 밸리를 돌며 와인을 익혔고, 미국은 미시간의 와이너리, 일본에서는 청주와 식초 공장을 틈나는 대로 둘러보았다.
그는 집에 포도밭이 있어서 젊은 시절부터 술 담는 일을 연례행사처럼 지냈다. 나이 들어서는 연구 생활의 틈을 내어 품종별로 시험 양조를 하기도 했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포도는 대부분 와인에는 적합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 과정에서 부여 은산 지역의 스튜벤 (steuben)이란 품종에 주목하기도 했다.
최우영 충남대 명예교수 |
그는 독특한 와인의 향미를 찾았을 때 즐거움을 느낀다고 말한다. 식초를 여러 해에 걸쳐 장기 숙성시킨 후 향상된 익은 맛을 찾아갈 때도 마찬가지다. 그가 자랑하는 제품 몇 가지가 있다. 와인 중에서는 은산 스튜벤와인, 익산 황매와인, 성북동 살구와인, 증류주로는 '魂'항아리에서 숙성시킨 스튜벤그라빠, 오디 식초 중에서는 5년 숙성품 하나 등이다.
와인은 집에서 만들기가 비교적 쉬운 편인데, 원료가 준비되면 당도를 확인하고 주모를 첨가하여 온도를 유지해 주면서 2~3주의 발효 과정을 거친다. 당도계와 효모 균주가 필요하며, 발효 온도를 20~25℃로 유지한다.
식초는 와인보다 훨씬 까다롭다. 원료에 미리 식초산이 1% 이상 존재하여야 초산발효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또한 적정 온도가 30~35℃여서 외부 조절 장치가 필요하다. 기간도 2개월 이상으로 길다. 발효 후 와인과 식초를 숙성하는데 최소한 3~6개월이 소요되며, 포도 와인의 경우에는 냉장 숙성을 포함해야 신맛을 낮출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제품이 맑아지며 향미는 안정된다.
뽕나무는 토질을 가리지 않고 잘 자라지만, 야생동물 때문에 산밑에서 묘목을 키우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시련을 겪었지만, 어느 정도 묘목을 살려 뽕밭을 이루고 2, 3년을 지나면서 수형을 잡고 오디를 수확하게 되었는데, 이상하게도 고라니들은 오디에는 관심이 없다. 매년 풍작을 이루었고, 6월에 수확한 다음 냉동실에 넣고 사용해 왔다.
하지만 잘 나가던 뽕밭에 몇 년 전 큰 사고가 발생했다. 집중호우로 산골 물이 휩쓸고 내려가서 나무뿌리가 노출되기도 하고 엉망이 되는데, 복구작업을 잘 마무리하고 관리에 주의를 기울였지만, 뽕나무 수세가 되살아나지 않았다. 그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오디 재배를 접기로, 개원 16년 만이다. 생각하면 폭우 탓만은 아니다. 영농환경이 많이 변했다. 인력난이 심해져 더 이상 혼자의 힘으로 감당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그래도 그에게 뽕밭은 잡념을 앗아가는 선원禪院 같은 곳이라고 한다. 애견과의 산책길이 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사철 바뀌는 들꽃과 새소리는 대자연과의 통로란다.
민순혜/수필가
민순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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