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낙문 세종도시공사 경영본부장 |
길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하여 '길과장', 카톡으로 업무를 지시하고 보고를 받는다하여 '카국장' 이란 신조어도 생겼다. 일주일에 하루 세종에 있으면 1급 실장급, 이틀 있으면 2급 국장급이고 사흘 있으면 3급이라는 자조적인 푸념도 있다. 이 모든 것이 중앙정부는 세종에, 국회와 대통령실은 서울에 위치하여 발생한 문제다. 예산철이나 상임위가 열리는 기간은 말할 것도 없이 허구헌날 불러대는 국회의원이나 보좌진들, 그리고 대통령실의 요구에 대응하려니 이러한 일이 1년 내내 반복된다.
장·차관을 비롯한 의사결정권자는 서울에 있다. 그러니 중요한 결정들이 서울에서 주로 이뤄진다. 사무관 등 실무진은 세종에서 작업을 하고 중간간부들은 메신저 역할을 한다. 수시로 만나 얼굴 맞대고 치열하게 토론하고 검토해야 할 일이 전화나 카톡으로 이루어 진다. 정책의 질이 떨어지고 일의 진행이 지지부지한 이유이기도 한다.
KTX 표 구하느라 매일 난리를 치룬다. 표를 구할 수 없어 발을 동동 구르고 길을 가면서도 누군가 취소한 표를 잡느라 난리를 치루는 게 일상화 되었다. 표가 없어 피곤한 몸 이끌고 입석으로 오가는 경우도 허다하다. 밤늦은 시간 KTX 오송역에 가면 하루일과를 마치고 기진맥진한채로 힘들게 걸어가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이것이 대한민국 최고엘리트 공무원들의 슬픈 모습이다.
사회적 비용도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세종청사 공무원의 연간출장비는 2015년 약 200억원, 2018년 330억이니 올해에는 최소 500억원 이상의 출장비가 소요될 전망이다. 출장비 외에 공무원이 길에다 뿌리는 출장비의 2~3배에 해당하는 시간손실비용과 정부출연기관 등 입주기관이 치러야하는 비용까지 합치면 연간 수천억원의 국민세금이 낭비되는 셈이다. 이 엄청난 비효율을 방치하고 어떻게 세계와 경쟁할 수 있을까?
우리의 경쟁국가들이 모두 같은 생활권에 모여 있다. 급하면 뛰어서 혹은 택시라도 탈수 있도록. 정부의 경쟁력이 곧 국가의 경쟁력인 시대, 각국은 치열하게 노력하고 있다. 미국정부는 효율성을 강화하기 위해 정부효율부(Department of Government Efficiency, DOGE)를 설치, 그 수장으로 테슬러 최고경영자인 일론 머스크를 임명했다고 한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신행정수도 건설특별법'은 위헌이라는 20년전 판결에 갇혀 아무것도 못하고 퇴보하고 있다. 세종시가 행정수도의 기능을 못하면서 국가균형발전의 큰 틀이 무너졌고 지방이 거대한 수도권에 맞서 경쟁해야 하는 각자도생의 시대가 되었다. 불과 4명의 대통령이 바뀌는 짧은 기간 동안 약 230만명의 인구가 추가로 비좁은 수도권으로 몰려들었고, 총인구의 51%, 청년인구의 70%, ICT 종사자의 85%가 수도권에 산다. 이런 절망적인 수치는 국가균형발전이 완전히 실패했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런 복잡한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 할 수 있을까? 이분야를 오랫동안 연구한 필자가 볼때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우선 '새 대통령의 임기를 세종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대통령이 세종에서 임기를 시작하면 모든게 바뀔 것이다. 장차관을 비롯한 중앙부처공무원들의 삶과 업무방식이 완전히 바뀔 것이고 지지부진했던 각종 국가균형발전정책들도 봇물터지 듯 탄력을 받을 것이다. 세종시의 장래모습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있다. 이참에 헌법을 바꾸어 제대로 된 행정수도를 만들자는 의견이 있고, 행정수도 건설이 여전히 위헌인지 다시 따져보자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절차가 복잡하고 시간이 걸리는 사안이므로 대통령의 임기를 세종에서 시작한 후 결정해도 된다. 세종 대통령시대가 국가경쟁력 회복 및 국가균형발전의 새로운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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