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충남대 에너지과학기술대학원 교수 |
일본이 2020년 도쿄 올림픽의 1년 지각을 감수하고도 개최하면서 세계에 내놓고 싶은, 여러 가지 기획물 중의 하나가 공중화장실이었던 모양이다. 공중화장실에서 신기하게 보일 수 있는 전기변색유리 기술(영화를 보면 외국인 여성이 사용법을 히라야마에게 묻는다)이나, 주위와의 조화를 고려한 공공 건축(장소에 따라 각각 다른 형태의 공중화장실)이기도 하고, 매일 스카이트리를 지나가는 씬들이 있어서 그런 생각이 났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초기의 영화제작의도는 그러했을지 모르나, 시각적인 연출 능력이 탁월한 독일 빔 벤더스감독을 영입하고, 칸느 남우 주연상을 받을 정도의 연기력의 주인공과 특유의 스토리텔링으로, 이 영화는 울림이 깊은 독립영화가 되었다.
영화의 내용을 조금 더 살펴보자, 히라야마는 젊은 동료의 말에 의하면 어차피 더러워질 화장실을 쓸데없이 열심히 청소하고, 점심시간이면 구식 필름카메라로 나뭇잎 사이로 보이는 햇살을 찍으면서 샌드위치를 먹는다. 귀가하면 자전거로 공중목욕탕에 갔다가 역전상점가 단골 가게에서 식사 겸 술을 한잔하고 어두워져서 귀가한다. 스탠드 불빛 밑에서 노벨상 수상 작가 윌리엄 포크너의 책 '야생종려나무'를 읽으면서 잠이 든다. 주말이 되면 파란 작업복과 세탁물을 챙겨 빨래방으로, 필름 사진을 현상 인화하고, 헌책방 여주인의 수준 높은 작가 평을 들으며 읽을 책을 고른다. 영화에는 무의미한 몸짓의 노년의 홈리스가, 예의를 모르는 젊은 엄마가, 무개념의 젊은 동료가 등장하기도 한다. 영화를 보면서 굳이 의도를 유추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쯤되면 이 영화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일본의 국제사회에 보이고 싶은 공중 문화에서부터 청소원, 헌책방 주인 같은 서민들의 인문 교양 자랑에서 더 나아가, 고령화 사회의 일본에서도 MZ세대를 비꼬나 싶기도 했다.
정작 중요한 것은 대화에서 나온다. 주말 단골 술집 여주인의 전남편(말기 암 환자)과의 우연한 인생 대화가 나온다. 질투인지 아쉬움인지 모를 감정에 휩싸였던 히라야마도 상대방이 "죽기 전에 아내를 보고 싶었다는" 말에 두 남자는 친해져서 철(?)없이 그림자놀이를 한다. 또 갑자기 가출해 찾아온 10대 조카와 지내면서도 "각자가 사는 수많은 다른 세상", "다음은 다음, 지금은 지금" 같은 대화를 나누었고, 조카가 읽는 중이라는 책을 줘서 보내고 여동생과 오랜 사연이 있을 법한 대화를 나눈다. 다음 날 여전히 같은 루틴으로 아침 햇살을 받으며 출근하는 히라야마의 얼굴이 웃는 듯, 우는 듯한 표정으로 수 분간 롱테이크, 클로즈업으로 영화가 마무리된다.
우리와 일본은 역사 지정학적으로 밀접하여,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도 한다. 두 나라 모두 고도 성장기를 거쳐 선진국 진입하였고, 이제 저성장 국면을 피할 수 없으며, 초고령사회로의 인구구조변화를 겪고 있으며, Z세대 포함, 심각한 세대 간 차이를 보이는 상황이다. 일본보다 결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결코 안정적이다 자신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우리는 과연 어떤 대화를 가족 간, 세대 간 할 수 있을까? 작년 12월 3일 이후부터 우리나라의 신문 방송의 내용과 함께 사람들 사이의 대화 내용을 떠올린다. '퍼펙트 데이즈'중에 나온 소설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에 대한 헌책방 여주인의 비평이 생각난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는 불안을 묘사하는 천재적인 작가죠. 그녀 덕에 공포와 불안이 다르다는 걸 알았어요." /김성수 충남대 에너지과학기술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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