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무제에게 호양 공주(湖陽公主)라는 미망인 누이가 있었는데, 은근히 송홍(宋弘)이라는 신하를 흠모했다. 공주의 눈에 위풍당당한 용모와 덕에 넘치는 기품이 돋보였던 모양이다. 광무제가 알아채고 둘의 연을 맺어주려 한다. 어느 날 송홍이 입궐하자, 아내를 바꿔보는 것은 어떠냐며 의사를 떠본다. 김희영 저 <이야기 중국사>에 의하면 송홍이 이렇게 말한다. "소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가난할 때 사귄 친구는 잊어서는 안 되며, 구차하고 천할 때 고생을 같이 하던 아내는 절대로 내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황제가 처남매부 되자 청하는데 근엄하고 완곡하게 거부한 것이다. '빈천지교(貧賤之交)는 불가망(不可忘)이요, 조강지처(糟糠之妻)는 불하당(不下堂)'이란 말이 여기에서 유래했다 한다.
어진 인재가 수없이 등장하지만, 한 사람만 더 살펴보자. 처사(處士) 엄광(嚴光, BC.39-AD.41) 이야기다. 엄광은 광무제와 어려서 동문수학한 죽마고우이다. 광무제의 창업에 적잖이 기여했지만, 황제에 오르자 홀연히 사라졌다. 수소문 끝에 어렵게 찾아, 삼고초려 끝에 데려왔다. 광무제가 "이 사람 엄광이, 나를 도와주지 않을 텐가. 서로 돕는 게 의리가 아니겠는가?" 엄광은 눈을 크게 부릅뜨고 광무제를 노려보며 말했다. "자네는 옛날 요임금 때 소부(巢父)가 귀를 씻었다는 고사를 들어보지도 못했는가? 선비에게는 굽힐 줄 모르는 뜻이 있는 것일세. 나를 귀찮게 하지 말아 주게." 광무제가 간의대부(諫議大夫)를 제수했으나, 집으로 돌아가 농사와 낚시로 세월을 보냈으며, 이후 부춘산에 들어가 은거하며 일생을 마쳤다. 한나라 때 청절(淸節)의 선비가 많이 나온 것은 엄광의 이 같은 뜻을 본받은 데서 연유한 것이라 한다.
공의 유무, 크기에 따라서 알맞게 포상하는 것이 논공행상이다. 물론, 논공행상보다 더 중요하고 우선해야 하는 것이 인재등용이다. 진지한 검증을 통해 발탁하고 적재적소에 배치, 능력을 백분 발휘 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해야 한다. 전문성, 능력도 없으면서 엉터리 공이나 허울로 한 자리 차지하려는 요즘 세태와 비교하면 얼마나 신선한가? 두고두고 귀감이 되었던 모양이다.
김홍도, <동강조어>, 지본담채, 111.9 × 52.6cm, 보물 제1971호, 간송미술관 |
다양한 형태의 고사인물도도 많이 그려진다. 김홍도(金弘道, 1745 ~ 1806 조선 도화서 화원) 의 <삼공환불도(三公不換圖)>도 이 고사가 소재이다. 대자연 벗 삼아 유유자적하는 것을 삼공벼슬과 바꿀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림은 같은 소재의 김홍도 작 <동강조어(東江釣魚)>이다.
상부와 하부가 나뉘어져 있다. 사이에 큰 여백이 있어 이색적이다. 상하의 나무가 같은 크기인데다 심원법으로 그려져 심산유곡이 바로 눈앞에 있고, 사람이 아주 먼 아래에 있는 것 같다. 낚싯대 떠난 눈길 역시 고기 낚는 것과 거리가 멀다. 물아일체의 경지가 절로 느껴진다.
양동길/시인, 수필가
양동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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