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희 한국표준과학연구원 광도측정그룹 책임연구원 |
다른 광원들과는 다르게 레이저가 특별히 더 많은 곳에 활용되는 이유는 레이저가 가진 몇 가지 독특한 특징 때문이다. 우선 대부분의 레이저 빛은 잘 퍼지지 않고 직진하며, 일반적인 태양광이나 형광등 빛과는 달리 특정한 한 가지의 선명한 색상을 가진다. 또한 다소 생소한 개념일 수 있으나, 레이저 빛은 높은 결맞음(coherence)을 가져 여러 상황에서 물결무늬와 같이 나타나는 간섭 현상을 관측할 수 있다. 이 높은 결맞음 성질 덕분에 레이저 빛은 매우 작은 지점에 모으기도 쉽다.
이러한 레이저의 독특한 특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도방출복사(Stimulated Emission of Radiation)라는 현상을 알아야 한다. 사실, 레이저(Laser)는 'Light Amplification by Stimulated Emission of Radiation'의 약자이며 그 이름 안에 이미 유도방출복사란 말이 들어가 있다. 여담이지만, 유도방출복사를 처음 이론적으로 예측한 사람은 상대성 이론으로 유명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다. 남들이 1개도 이루기 어려운 업적을 무수히 많이 이룬 것을 보면 천재는 다르긴 다른 모양이다.
유도방출복사란 어떤 물체에 빛이 들어오면 그 빛에 의해 유도되어 추가로 빛이 방출되는 현상이다. 이때 방출된 빛은 들어오는 빛과 동일한 성질을 갖는데, 이를 유도방출복사의 자체 일관성(self consistency)이라고 부른다. 레이저 내부에서 똑같은 성질을 가진 유도방출된 빛이 거울 2개로 이루어진 반복 반사 구조를 통해 반복적으로 더해져 증폭(Light Amplification)되며, 이것이 레이저가 다른 광원과 다르게 특별해지는 이유이다. 처음 발생했던 빛이 똑같은 성질을 가진 채 계속 증폭되기 때문에 보통의 레이저에서 나오는 빛은 방향, 파장, 위상, 편광 등 빛이 가질 수 있는 모든 물리적 특성이 단일화된다.
이 단일성 덕분에 첨단 과학기술 분야에서 레이저는 없어서는 안 될 아주 중요한 도구이다. 최첨단 초미세 반도체 공정에 활용하는 극자외선을 생성시키기 위해 레이저를 사용하며, 최근에 큰 주목을 받는 양자 컴퓨터를 만들 때도 사용한다. 특히, 단일성은 측정의 기준점이 되기 때문에 측정표준과 관련된 과학기술을 연구하는 한국표준과학연구원(KRISS)에서 그 활용 비중이 높다. KRISS에서는 레이저 빛의 일정한 주파수를 원자시계가 내는 신호와 동기화하여 정확한 시간을 구현하거나, 선명한 간섭 현상을 측정하여 길이를 정밀하게 측정한다. 또한, 빛의 세기의 기본 단위인 cd(칸델라)를 정확히 정의하는 데에도 레이저 빛을 활용하며, 초정밀 압력측정 및 미세 화학 물질 분석에도 레이저를 사용하고 있다.
레이저는 과학 혁신을 이끄는 핵심 도구로 자리매김하면서 수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기도 했다. 기초 이론 및 초기 개발에 대한 공로로 1964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찰스 타운스, 니콜라이 바소프, 알렉산드르 프로호로프를 시작으로 최근에는 아토초 레이저 기술의 발전에 대한 공로로 피에르 아고스티니, 페렌츠 크라우스, 앤 륄리에에게 2023년 노벨 물리학상이 돌아갔다. 독자분들도 다음번에 레이저 포인터를 사용할 때, 단순히 발표 도구로서만 생각하기보다 레이저가 첨단 과학기술 분야에서 활약하는 초특급 에이스라는 사실을 떠올려보시면 좋을 듯하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과학자들이 레이저 기술을 활용해 새로운 혁신을 일으킬 수 있도록 응원해 주시기를 바란다. 이강희 한국표준과학연구원 광도측정그룹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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