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진 교수. |
사이토 이사무는 '사람은 왜 거짓말을 할까?'에서 허언증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에 따르면 알코올, 마약, 도박 중독자와 같이 밥 먹듯 거짓말을 일삼는 이들은 "자신의 실패나 책임을 타인에게 전가"하는 방식으로 자존심을 높이고자 한다. 이 허언증 환자들은 시쳇말로 타인의 주목을 갈구하는 관심종자처럼 "자기중심적이고 제멋대로이며 어린아이 같"아서 "다른 사람이 자신을 보호해주고 대접"해주기를 갈망한다. 나아가 자신의 처지를 "극적으로 보이기 위해 과장해서 비극의 히로인"처럼 자기서사를 꾸며낸다. 불의에 맞서다 좌절한 비극적 영웅으로의 세탁이랄까 포장이랄까.
이 글을 쓰게 한 그날도 아무 일 없었다. 내겐 그저 그런 반복되는 무료하고 권태로운 일상의 평범한 겨울밤일 뿐이었다. 늘 그렇듯 반주 삼아 막걸리 한잔하고 책을 펼쳤다 이내 잠들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내 동거인은 내 곤한 잠을 깨우고는 난데없이 계엄을 선포했다. 아니, 이 여자가 실성했나! 아닌 밤중에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것도 유분수지…. 그러나 그 초현실적이고 황당하며 경악스러운 상황은 사실이었다. TV화면엔 무장한 군인들이 국회 유리창을 깨부수고 의사당으로 난입하고 있었다.
대통령이 비상계엄 명분으로 내세운 건 자동반복강박증처럼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함이라 했다. 그리고 엊그제 새벽 이를 추종하는 일군의 무리가 폭도가 되어 민주공화국의 상징이며 법치의 토대인 법원을 침탈 유린했다. 이건 우리 근대사 야만의 군사독재 시절에도 없었던 일이다. 대통령은 부정선거에 의해 다수 의석을 차지한 야당의 폭거에 의해 망국의 길로 가고 있다고 굳게 믿는, 편집증 환자에 가까워 보인다. 그리하여 계엄이다. 숭고한 결정이다. 숭고는 황홀과 도취를 부른다. 설명이 필요 없는 게 숭고다. 여기에 이성과 상식이 작동할 자리는 없다.
지난해 여름 '상식의 독재'를 펴낸 논객 한윤형의 말에 따르면, 음모론에는 무엇보다 구멍, 한 치의 빈틈도 없다. 이를테면 그럴듯한 논리적 개연성으로 천의무봉으로 이야기를 짜 맞춘 게 음모론이다. 지상의 우리는 천상의 신처럼 모든 걸 굽어 살필 수 있는 전지적 권능이 없다. 우리가 사실이라 믿는 것에는 필연적으로 여기저기 숭숭 구멍이 뚫려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음모론은 그 빈틈, 바늘구멍조차도 없다. 의심의 믿음을 빠짐없이 상상력으로 채워 넣기 때문이다. 가정된 믿음을 기반으로 거기에 허구를 덧씌워 탄생하는 게 음모론이다.
작금의 현실에서 특정 이념이나 믿음에 과잉 기초한 음모론은 화학물질에 중독되는 것보다 더 유해한 것처럼 보인다. 비화학물질 중독은 공적 시스템을 파괴한다. 작금의 상황이 그러하다. 한윤형이 말하는 '상식의 독재'는 공통의 보편 가치다. 그의 말대로 절대적 중심을 상실한 우리 사회는 하나의 상식이 지배하던 세계에서 파편 분화하여 투쟁하는 왜곡된 상식들이 난무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지경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상식의 복원, 상식의 독재다.
김홍진 한남대 국어국문창작학과 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