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호 배재대 미디어콘텐츠학과 교수 |
첫째, 일부 언론은 소문과 음모론을 확대 재생산하며 국민적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 하이에나가 강력한 턱과 협동력으로 먹잇감의 잔해까지 남김없이 처리하듯, 탄핵 정국 속에서 일부 언론은 소문과 음모론을 무리 지어 부풀리며 정치적 타깃을 무자비하게 공격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특히 SNS에서 유통되는 소문을 레거시 미디어가 확대 재생산하는 사례가 부끄럽게도 빈번했다. 2016년 탄핵 정국 당시에도 언론은 경쟁적으로 선정적인 헤드라인을 쏟아냈으나, 이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난 것도 적지 않았다. 중앙일보는 미국 대사관이 최태민을 '한국의 라스푸틴'으로 평가했다고 보도했지만(2016년 10월 27일), 이는 단순히 한국 내 소문을 인용한 것에 불과했다. 채널A는 최순실(개명 후 최서원) 씨가 박근혜 대통령의 이란 순방에 전용기로 동승했다고 보도했으나(2016년 11월 15일), 이 역시 사실이 아니었다. 세월호 참사 당시 '올림머리 90분' 보도(한겨레 2016년 12월 7일)는 실제로 머리 손질에 든 시간이 20~25분으로 밝혀졌다. 최순실의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 개입설(2016년 10월)이나 박근혜 대통령의 '굿판' 의혹(2016년 11월) 역시 언론에서 대대적으로 보도했지만, 이후 사실로 확인되지 않았다. 2024년 탄핵 정국에서도 형법 제126조가 금지하는 피의사실 공표를 무시한 '묻지 마' 식 단독 보도가 난무하고 있다. 공조수사 본부나 경찰청 수사관이 흘린 정보를 기자들이 확인 없이 살을 붙여 기사화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기사는 피의자의 방어권을 침해(방송심의 규정 9조)할 뿐만 아니라, 재판 과정에서 뒤바뀔 가능성도 크다.
둘째, '태세 전환'이라 불릴 정도로 기회주의적인 태도 역시 문제다. 탄핵 정국 속에서 여론의 기류에 따라 입장을 바꾸는 언론의 모습은 어찌 보면 안쓰럽기까지 하다. 예를 들어, 탄핵 정국 초기에 일부 언론은 한동훈 전 대표를 띄워주는 기사를 경쟁적으로 쏟아냈다("한동훈, '내란 수괴' 탄핵에 정치생명 걸라", 12월 11일). 그러나 그의 정치적 영향력이 한계를 드러내자 관련 기사와 칼럼들은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었다. 반대로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상승하자, 언론의 논조는 "직무 정지된 대통령을 꼭 끌어내서 수사해야 하나(1월 9일)"는 식으로 변화했다.
셋째, 실정법을 대놓고 무시한 보도 관행도 도마 위에 올랐다. JTBC와 MBC는 헬기를 이용해 한남동 대통령 관저를 촬영한 화면을 내보내며 "대통령 관저를 헬기로 찍어 보도하는 것은 사상 처음"이라는 멘트를 남겼다. 그러나 이는 명백히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 보호법을 위반한 행위다. 국가 중요 시설을 사전 허가 없이 촬영하거나 보도하는 것은 법적 금지 사항임에도 일부 언론은 이를 강행하며 국민의 알 권리라는 명분 뒤에 숨었다.
넷째, 과도한 정치적 프레임 의존도 또한 문제다. 예를 들어, 12월 18일 보도된 "비상계엄의 나비효과… 주한미군 철수 불러오나"는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이 미국의 주한미군 철수를 초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근거로 닉슨 정부가 한국의 리더십 불안정을 이유로 주한미군 감축을 결정했다는 사례를 들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닉슨 대통령 당시 주한미군 감축은 '닉슨 독트린(Nixon doctrine)'에 따른 미국의 전략적 조정이었다. 이를 단순히 국내 정치적 불안정 때문으로 연결 짓는 것은 역사를 왜곡한 것이다.
다섯째, 거의 소설에 가까운 기획 기사도 있었다. 예컨대, J 일보의 "헌재 8인 해부"라는 기획물은 헌법 제103조(사법권의 독립성)와 신문윤리강령 제3조(공정성 준수)를 침해할 소지가 크다. 이러한 기사는 독자에게 흥미를 제공할 수는 있어도, 언론의 공정성과 윤리를 훼손하며, 사법부의 독립성을 심각하게 위협할 가능성이 있다.
언론은 탄핵 정국과 같은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더욱 공정하고 책임 있는 보도를 해야 한다. 국민의 알 권리와 언론의 자유는 소중한 가치지만, 국가 비상 상황에서 무책임한 보도는 사회 혼란과 갈등을 부추길 뿐이다. 언론은 2024년 12월 그리고 신년 한 달여 기간을 냉정하게 되돌아보아야 한다. /강병호 배재대 미디어콘텐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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