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클로즈 유어 아이즈 포스터. |
이 작품은 영화의 존재론이라 할 만합니다. 영화가 무엇인가? 영화가 무엇을 할 수 있고, 또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보여 줍니다. 영화 한 편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질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어떤 이에게는 자신이 누구인지 깊이 성찰하며 생의 본질을 발견하게 할 수 있습니다.
2시간 50분에 달하는 영화의 80%는 지루하게 흘러갑니다. 영화 감독이자 작가인 미겔의 소소한 일상과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그리고 텔레비전 프로그램인 <미제 사건>에 친구 훌리오를 찾는 내용을 다루는 일로 출연하는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그런데 그 역시 무언가를 잃은 사람입니다. 친구를 잃고, 아들을 잃고, 가족도 없이 혼자 삽니다. 훌리오도 딸과 헤어져 지내며 내내 그리워하던 사람입니다. 관객인 우리도 무언가를 놓치거나 잃어버리고 삽니다. 어쩌면 사는 일이 원래 그런 것인지 모릅니다. 꿈을 잃고, 사랑을 잃고, 마음을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그렇게 무심하게, 평범하게 쌓이고 쌓인 두 시간 20분이 나머지 30분의 시간을 튼튼하게 떠받칩니다.
훌리오는 영화 속 영화의 늙은 아버지가 마침내 어린 딸을 만나게 해 주는 역을 맡습니다. 자신이 출연한 영화를 보며 그는 기억을 회복했을까요? 그리고 거기 와 있는 딸을 알아보고 재회의 기쁨을 누렸을까요? 영화는 열린 결말로 끝을 맺습니다. 그랬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영화가 그런 일을 한다는 겁니다. 잃은 기억, 놓친 마음, 덧없이 흘러버린 시간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한다는 것. 그래서 거기 그 순간 놓였던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하는 것입니다.
기억을 잃고도 작은 필통 속에 이것저것 담아 놓은 물건을 소중히 간직한 훌리오. 파편처럼 혹은 흔적처럼 남아 있는 옛것들이 우리의 기억을 되살릴지도 모릅니다. 그것들에 우리가 걸어온 길과 시간과 마음이 묻어 있습니다. 이 영화는 어마어마한 걸작 중의 걸작입니다.
김대중 영화평론가/영화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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