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일 사회공헌연구소 대표 |
이번 탄핵 정국의 발단은 윤 대통령의 위헌적인 12·3 비상계엄에서 비롯되었다. 12·3 비상계엄에 대한 법적 성격은 헌법재판소와 법원의 판단에 따라 결정되겠지만,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헌법 제65조 ①)한 행위와 "내란"(형법 제87조) 행위로 규정되는 데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국정을 나름대로 운영하려는 대통령에게 주어진 다양한 정치 행위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는 이번 비상계엄은 정치적으로는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그것은 가감 없이 쿠데타라고 불러도 지나치지 않다. 쿠데타라는 용어는 1799년 프랑스 제1공화국 하에서 이집트 원정 군사령관인 나폴레옹이 의회제 정부를 무력으로 붕괴시키고 독재체제를 수립했던 '브뤼메르(Brumaire, 프랑스 혁명력에서 11월인 안개 달) 18일' 반란에서 유래한다. 즉 쿠데타란 무력을 동원해 국가(Etat)를 치는(coup) 행위를 뜻한다.
일반적으로 쿠데타는 '군사반란형 쿠데타'(military coup d'Etat)와 '친위 쿠데타'(self-coup)라는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전자는 군부가 불법적으로 국가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벌이는 반란으로, 우리 정치사에는 1961년 5·16 군사쿠데타와 1979년 12·12 군사반란, 그리고 1980년 5·17 내란이 이에 해당한다. 후자는 정부 수반이 위헌적으로 정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비상권한을 행사하거나 의회를 해산시키는 정변으로, 1952년 부산정치파동과 1972년 10월유신이 대표적이다. 이번 윤대통령에 의한 쿠데타는 비교적 성공 가능성 높은 전형적인 친위 쿠데타였지만, 과거의 사례들과 달리 공화주의를 사수하겠다는 국회의 단호한 결기, 헌정 민주주의를 지지한다는 국민들의 확고한 신념, 궁극적으로는 국민의 뜻에 따라야 한다고 판단한 대다수 쿠데타 가담자들의 양식 등에 의해 무위로 끝났다. 참으로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쿠데타 시도는 권력정치적 측면에서 보면, 대통령 개인의 망상과 무모함에서 비롯된 정치적 해프닝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 민주주의의 면면한 역사와 전통에 비춰보면, 천인공노(天人共怒)할 만한 정치적 만행임이 분명하다. 적어도 현재의 탄핵 국면에서는 거룩한 분노까지는 아니더라도 공적 분노를 표출하는 것은 당연하고 지당하다. 그럼에도 이 같은 사태가 발생하게 된 근원과 원인을 살펴보고 이를 반면교사로 성찰하는 일은 분노하는 것 못지않게 시급하고 중요하다. 비정상적인 정치 현상이 발생하는 데에는 행위 주체의 개성적 요인뿐만 아니라 정치구조 및 제도의 제약적 요인도 크게 영향을 미친다.
대체로 이번 사태를 일으킨 윤 대통령의 개인적 요인으로는 낮은 국정 지지도에 대한 겸허함 대신에 억울함, 사랑하는 부인에게 비난을 가하는 사람들에 대한 적개심, 거대 야당을 한 줌의 세력으로 폄하 하려는 인지 부조화 등이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사태의 이면에는 차별과 혐오의 정치문화, 적대와 배제의 정치제도, 정치 리더십이 전혀 디스플린(discipline)되지 못한 인물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정치메커니즘 등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아마도 조만간에 탄핵 정국이 끝나면 바야흐로 대선 정국이 펼쳐질 것이다. 부디 다가올 대선이 진실, 용기, 관용, 통찰이라는 정치적 미덕을 지닌 인물과 미숙, 폭압, 탐욕, 교만이라는 정치적 악덕을 지닌 사람을 제대로 판별하는 전기(轉機)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유재일 사회공헌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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