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태 교수 |
다니엘이 말한 대로 한국은 집단 지성보다는 소수의 엘리트에 의존해 온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엘리트 중심의 사회체제와 문화가 자리를 잡았다. 중소기업보다는 엘리트 대기업, 대중 정치보다는 엘리트 정치, 엘리트 시험문화, 엘리트 재벌이 등장하는 드라마 등이 그 증거다. 정치에서도 제왕적 대통령 한 사람에게 국가의 명운을 기대고 있다.
한국의 구세주 정치시스템의 문제는 종종 큰 부작용을 낳았다. 다니엘에 의하면 우리 정치는 고질적인 사회 문제들을 해결해 줄 것 같이 인식되는 대통령을 선출한 후 임기 후반에 인기가 떨어지면 현직 대통령을 심판할 새로운 영웅 서사가 만들어지는 구조라는 것이다. 제왕적 대통령은 인사권을 휘둘러 자기편을 만들고 정책보다 정쟁에 집중해왔다. 그리고 일단 당선이 되면 전임 정권의 색채를 지우기에 급급한 나머지 정책의 지속성이 떨어진다. 정책의 지속성과 일관성이 결여된 정치환경은 해외 기업과 투자자들의 불안감을 높인다.
구세주 정치의 특징은 인물을 키워내지 않는다는 데 있다. 건강한 민주 정당이라면 유능한 인재를 발굴하고 차기 대선 주자로 키워나가야 한다. 그런데 윤 정권과 국민의힘은 이준석과 한동훈을 내쫓았고, 이재명의 민주당은 박용진을 쳐냈다. 이런 구태 정치로는 새로운 유능한 인재가 끊임없이 양성되는 시스템 정치를 구현할 수 없다.
우리는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실망한 나머지 구세주로 윤석열 대통령을 선출했다. 윤 정부는 전임 정부의 정책을 대부분 뒤집으며 차별성을 강조했다. 그렇지만 그가 전 정권에서 가장 실패한 부동산 정책 등을 뒤집은 것은 이해할만하나, 임기 내내 불통으로 일관했고 인사 파동과 영부인의 불법을 방어하다가 곧 지지율이 급락했다. 윤 정부의 무색무취한 경제정책은 코로나 종식 이후 OECD 국가 중 몇 안 되는 성장률 하락을 기록하며 불황의 늪으로 인도했다. 게다가 뜬금없는 비상계엄을 선포해서 탄핵을 자초하고 국가를 위험으로 몰아넣었다.
탄핵 정국의 불확실성 속에서 사태를 해결할 정치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대통령 권한대행은 최소한의 통치행위만 해야 한다면서 윤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에 있어 물리적 충돌이 눈앞에 보이는데도 뒷짐만 지고 있다. 이 얼마나 무책임한 행태인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한국 경제의 버팀목이 되어야 할 최고의 경제 전문가들이 좌고우면하면서 불안정성을 해소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도 탄핵 이후의 대선을 겨냥해서 여당으로서 책임지는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계엄은 인정하지만 내란은 인정하지 않으며, 헌법재판관 임명을 결사반대했다. 심지어 대통령 체포영장을 발부해준 판사와 헌법재판소를 공격하고 비난하고 있다. 윤 대통령 탄핵 이후 조기 대선이 기정사실화 되는 마당에 최대한 시간을 끌어,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현실화돼 대선 출마가 금지되는 것을 기대하는 전략을 쓰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도 자신의 공직선거법 위반사건 등의 재판을 최대한 늦춰서 대선을 준비하는 전략을 보이고 있다. 아무리 검찰이 무리수를 두었다고 해도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는 너무도 커 보인다. 독보적인 대선 지지율을 얻고 있는 그에게 조기 대선은 절호의 기회일 것이다. 대선은 빠를수록 좋고 재판은 늦을수록 좋기 때문에 치열한 수 싸움을 하는 것이 눈에 보인다.
정치적 혼돈 속에서 무정부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이런 불확실성은 대한민국의 대외 신인도에 악영향을 끼치며 한국 경제를 나락으로 내몰고 있다. 우리나라는 언제쯤 구세주 정치를 벗어나서 건전한 시스템 정치로 나아갈 수 있을까? 우리 정치가 모든 일을 사사로움 없이 공평하게 처리하는 지공무사(至公無私)의 정신 아래 건강한 정치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김정태 배재대학교 글로벌자율융합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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