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국회 자금을 차단하고 국회를 대체할 비상 입법기구 창설을 지시했으며, 국무위원 다수의 만류에도 ‘종북좌파 척결’을 운운하며 강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법무부가 더불어민주당 김승원 의원실에 제출해 1월 4일 공개된 83쪽 분량의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공소장에서,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는 ‘비상계엄은 헌법상의 국민주권과 의회·정당제도 등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파괴하려는 국헌문란의 목적’이라고 명시했다.
1월 4일 오후 대통령 관저가 있는 서울 용산구 한남동 한남대로에서 민주노총 등이 윤석열 대통령 체포를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
곽종근 특전사령관의 지시를 받은 이상현 1공수여단장은 계엄 당일 오후 11시 57분께 140명을 국회로 출동시키면서 자신의 지휘차에 소총용 5.56㎜ 실탄 550발과 권총용 9㎜ 실탄 12발을 실었다. 다음 날 오전 0시 45분께에는 소총용 5.56㎜ 실탄 2만3520발과 2만6880발을 차량에 싣고 준비했다.
707특수임무단은 헬기 12대에 소총용 5.56㎜ 실탄 960발과 권총용 9㎜ 실탄 960발을 적재했고, 선관위로 출동한 3공수여단과 9공수여단도 일부 대대장의 차와 2.5톤 트럭에 실탄과 연막탄 등을 실었다.
수방사 군인들은 소총 15정과 권총 15정, 저격소총 1정, 5.56㎜ 보통탄 1920발, 5.56㎜ 예광탄 320발, 9㎜ 보통탄 540발, 슬러그탄 30발, 엽총용 산탄 30발, 섬광폭음수류탄 10발, 5.56㎜ 공포탄 360발 등을 소지했다. 문상호 정보사령관 지시를 받은 소령급 8명도 실탄 10발씩을 준비해 선관위로 출동했다.
그런데도 윤 대통령 측 석동현 변호사는 "그날 전부 비무장 상태로, 말하자면 실탄 장전 없이 갔는데 무슨 '총을 쏴서라도' 그런 지시가 있겠느냐"고 말한 바 있다.
1월 4일 오후 대통령 관저가 있는 서울 용산구 한남동 한남대로에서 대한민국바로세우기국민운동본부 등이 윤석열 대통령 체포를 반대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
공소장에는 "문건에는 '예비비를 조속한 시일 내 충분히 확보해 보고할 것, 국회 관련 각종 보조금, 지원금, 각종 임금 등 현재 운용 중인 자금 포함 완전 차단할 것, 국가 비상 입법기구 관련 예산을 편성할 것' 등이 기재되어 있었다"고 적시됐다.
검찰은 "헌법상의 국민주권 제도, 의회제도, 정당제도 등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파괴하려는 국헌문란 목적의 폭동을 일으킨 혐의가 있다"고 공소장에 적었다.
▲국무위원 만류에도 ‘종북 좌파’ 운운 강행=공소장에는 윤 대통령이 김용현 전 장관과 3일 오후 10시 비상계엄 선포 직전에 국무회의 심의를 하기로 하고, 당일 점심부터 오후 9시 33분까지 한덕수 국무총리를 비롯한 국무위원들에게 소집 이유를 알려주지 않고 '대통령실로 빨리 들어오라'고 지시했다고 적혀있다.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 직전 대통령실에 모인 윤석열 대통령과 국무위원들. |
이어 11명의 국무위원이 대통령실 대접견실로 모이자, 윤 대통령은 10시 17분부터 5분간 "지금 계획을 바꾸면 모든 게 틀어진다. 대통령의 결단"이라며 "국무회의 심의를 했고 발표를 해야 하니 나는 간다"고 나간 뒤 10시 23분께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검찰은 국무회의 절차와 비상계엄 선포 과정이 헌법과 계엄법에 모두 위배된다고 판단했다.
비상계엄 선포 안건을 국무회의 의안으로 제출하지 않았고, 11명이 모이기 전에 소수 국무위원과 비공식적으로 의견을 교환한 게 전부였다고 봤다. 일방적인 통보만 있었고 실질적인 논의가 없었으며, 행정안전부 의정관이 회의록을 작성하지도 못했다.
김 전 장관이 절차를 위반해 총리를 거치지 않은 채 대통령에게 계엄 선포를 건의했고, 국무회의 심의 없이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임명한 점도 위법이라고 봤다. 또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와 국회 통고를 문서로 하지 않아 국무총리와 관계 국무위원이 해당 문서에 부서(副署)하지 못했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서울=윤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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