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동기 8명이 졸업 후 50년 간의 삶과 우정을 담은 문집을 발간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전공과 직업이 각기 다른 대전고 53회 동기들의 이색적인 글 모음집인 <지나간 미래 50년-대전고 53회 8인의 삶과 우정>이 바로 그 책이다.
과거 세칭 일류고였던 대전고 53회(74년 졸업) 출신 8명의 동기생들은 고등학교 시절에 모임을 만들고 사회 진출 후 2007년 카페를 개설해 함께 운영하면서 카페에 쓴 글들을 중심으로 편집한 책을 펴냈다. 여기서 지나간 미래(Past Future)라는 개념은 역사학에서 거론되는 것으로, 현재의 시점에서 전망(prospect)하는 미래가 아니라 과거의 일정 시점에서 현재를 미래로 설정하고 회고(retrospect)하는 미래를 말한다. 보통 역사가들은 이 개념을 확장해 미래의 시점을 현재는 물론 과거 시점 혹은 미래 일정 시점을 잡아 돌아보는 회고로 확장하기도 한다. 지나간 미래라는 관점에서 과거를 본다는 것은 어떤 과거 사건은 물론 그것이 끼친 영향이나 귀결을 모두 알고 있는 상태에서 보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여기서 과거를 돌아본다는 것은 과거를 그냥 추억하거나 회상(rccall)하는 게 아니라 새롭게 드러나는 과거의 의미를 따져 볼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필자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한 후 카페에 올렸던 각종 장르의 글로, 가족과 친구 대소사, 여행기 외에도 각자 직업인으로서 시대를 논한 글도 있다. 8명의 동기들은 지금은 은퇴했지만 각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면서 활동을 했기에 주목할 만한 글들이 많다. 또 50여 년이 지난 오늘까지 이어 온 우정의 결과라는 점에서 가치가 있는 책이다.
이 책의 대표 편집자인 송상헌 공주교대 명예교수는 “이 책은 지금 시점에서 단순히 여러 명이 글을 모아서 낸 동인지가 아니라 과거 일정 시점에서 카페에 올린 글을 작성 시점을 밝히고 그대로 실었기 때문에 기존의 동인지와는 다른 독특한 의미가 있는 문집”이라며 “카페에 달린 댓글을 살펴보는 재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각자 개인의 일상 뿐 아니라 본의 아니게 당대의 여러 모습을 반영하고 있어서 역사적 가치가 있고 새롭게 즐길 수 있는 추억의 보고”라고 강조했다.
고교 동기생 8명은 고향도, 전공도, 직업도 다 가지각색이다. 이들의 전공은 역사, 무역, 수학, 불어, 사회학, 외교, 기계, 신문방송 등으로 다양하다. 직업은 대학교수, 행시를 통한 고급공무원, 교사, 무역회사 CEO,증권회사원,외시를 통한 외교관, 컴퓨터 관련 영업이사, 방송기자 등이다. 간단히 필자들을 소개하면 송재희 씨는 중소기업중앙회 상근부회장과 한국중소벤처무역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양지청 씨는 한성과학고 교사를 거쳐 선교사 자녀들을 위한 마닐라 한국아카데미 교장을 역임했다. 윤중섭 씨는 무역회사 대표를 지냈고, 추연곤 씨는 과테말라 대사를 비롯해 스페인, 콜롬비아, 에쿠아도르 등 주로 스페인어권 국가에서 활약한 외교관 출신이다. 이한준 씨는 현대증권에서 증권맨으로 활약했고, 김동호 씨는 컴퓨터 유통회사 전무로서 지금도 현역으로 활발하게 활약하고 있다. 김진원 씨는 아나운서로 출발해 대선과 총선 등 각종 토론회와 주요 뉴스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KBS 기자 출신이다.
김진원 전 KBS 보도국장은 “요컨대 책머리에서 강조한 대로 이 책은 고교 동기들의 아름다운 우정과 삶의 여정을 보여주는 동시에 사회 중견으로서 활약한 인재들이 각자의 시점에서 본 당대의 시대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말했다. 김 국장은 특히 “이 책의 필자는 파루회 회원들”이라며 “파루회는 대전고 53회 친구 8명을 지칭하는 팔우를 음차하여 팔우회라 명명하고 탄생했다”고 소개했다. 또 “파루회는 1972년 창립된 이후 지금까지 모임을 지속하며 우정을 나누고 있다”고 말했다.
파루회 회원 일동은 “이 책이 가진 첫번째 의미는 20세기말 격동의 시대에 태어나 끈질긴 인연으로 만난 대전고 동기 8명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섬세하게 보여준다는 점에 있고, 둘째는 우리가 살았던 시대의 모습을 여러 각도에서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라고 소개했다. 또 “셋째는 현재 시점에서 쓴 글도 있지만 대부분 과거의 일정 시점에 쓴 글을 모은 것이라 다른 회고록과 달리 시대와 더불의 살아온 삶의 기록 성격이 강한 책”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모쪼록 이 책의 독자께서 우리가 살아온 지난 세월이 지독한 고난의 세월이면서도 나름대로 삶의 즐거움과 의미를 찾는 낭만의 세월이기도 했다는 점을 공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이 책이 20세기말에서 21세기 초중반을 살았던 파루회원을 포함한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역동적이며 대단히 의욕적인 삶을 살았고, 그 결과 값진 성과를 이루었으며, 시대정신을 구현하는 당대인의 의무를 다했음을 후배들은 물론 후세들이 아는 계기가 된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다”고 전했다.
한성일 기자 hansung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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