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새해 소망과 나옹 이정의 <의송관안도(倚松觀雁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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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새해 소망과 나옹 이정의 <의송관안도(倚松觀雁圖)>

양동길/시인, 수필가

  • 승인 2025-01-03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생명체는 출산으로 영생을 도모한다. 뿐인가, 아이가 있어야 인생의 반을 알 수 있다. 풍요로운 인생의 참맛이 거기에 있다. 또 다른 희로애락이 있기 때문이다. 결혼 및 출산에 소극적인 젊은이가 많은 것 같아 안타깝다.

새해 소망이 저마다 다르겠으나, 아름다운 문화 속에 살고 싶은 간절한 마음은 대동소이 할 것이다. 세상이 아름다워지면 신바람이 절로 나고, 출산율도 자연 오르리라. 거기에 어린이, 젊은이를 진정 받드는 문화가 형성되면 활기와 생기가 넘치리라. 저출산의 근저에는 사회적 혼란, 경제적 부담, 불안한 미래, 나쁜 문화, 이런 것들이 있다. 동서고금이 다르지 않다.

문기가 넘치는 간결하고 정확한 필치, 윤필(潤筆)과 갈필(渴筆)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놀라운 솜씨에 반하여, 이정(李禎, 1578-1607)의 그림 몇 점 소개한 일이 있다. 전하는 그림이 매우 적지만, 입지의 나이에 세상을 등진 것이 안타깝고 아쉬워, 자주 들여다보게 된다. 그림은 <의송관안도(倚松觀雁圖)>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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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송관안도(倚松觀雁圖)> 나옹 이정, 지본수묵, 19.1 x 25.5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화폭 중앙에 배치된 소나무에 지팡이 든 사람이 기대서서 날아가는 기러기를 바라보고 있다. 윤곽선 하나로 그려진 얼굴모습이 얼마나 진지하게 다가오는가. 세상의 온갖 시름, 성찰과 사색이 담겨있다. 낙엽 흩날리며 가을이 떠날 때, 기러기도 따뜻한 곳으로 여로에 나선다. 간결한 노송의 솔잎처리처럼 기러기 행렬도 생략되었다. 한편으론 듬성듬성한 풀과 더불어 쓸쓸한 느낌이 배어 나온다. 농담 다스린 붓으로 그려진 먼 산과 중경 및 근경 옆에 배치된 운무가 깊다. 바다일까? 산골짜기 일까? 거리에 따른 알맞은 농담과 어울려 무한한 공간감과 거리감을 준다. 주의 깊게 바라보면 넝쿨식물이 노송을 휘감고 있다. 자연스럽게 고목의 느낌이 더해진다. 최소한의 묵으로 전하고 싶은 내용은 정확하게 드러내고 있음이다. 볼수록 그 기량이 탁월함을 알 수 있다.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許筠, 1569 ~ 1618, 문신)은 이정보다 9살 위였지만, 그의 재능을 무척 아껴 가까이 지냈나 보다. 1607년 2월 술로 병이 들어 서경(지금의 평양)에서 유명을 달리하자 몹시 애석해 하며 <나옹애사(懶翁哀辭)>란 글을 지었다. 그 내용에 의하면 '좋은 시절이나 아름다운 경치를 만나면 문득 술이 거나하여 소리 높이 노래 부르고 다녔다.' '아름다운 산수(山水)를 만나게 되면 흥얼거리며 바라보느라 집에 돌아갈 줄도 몰랐다.' '추위에 떠는 사람 만나면 옷 벗어 입혀주곤 했다.' '남에게 기식(寄食)하고 지냈으나 의(義) 아닌 것은 하나도 취하지 않았다.' '친구인 심우영(沈友英)·이경준(李耕俊)과 아주 도탑게 지내어 마치 형제 같았다.' 심우영, 이경준 등은 서얼 출신이다. 서얼차별에 대한 불만으로 여강의 양화나루에 서륜정을 짓고 함께 살며 스스로 죽림칠우(竹林七友) 또는 죽림칠현(竹林七賢)이라 불렀다.

얽매이거나 구애받지 않고 자유분방, 술 좋아하고 의리 있는 호방한 성격임이 드러난다. '정승이 불러다가 그림 그리게 하고는, 흰 비단을 마련해 주고 술을 잘 대접하였다. 그러자 이정은 일부러 취한 척하고 누웠다가 한참 만에 일어나, 솟을대문으로 소 두 마리에 화물(貨物)을 가득 실려 두 사람이 몰고 들어오는 모습 한 폭을 그려 놓고는 붓을 동댕이치고 가버렸다.' 정승이 억지로 그림 그리게 하자 뇌물 챙기는 장면을 그려놓고 도망쳤다는 말이다. 정승이 잡아 처단하려 하자 서경으로 도주했다. '그곳의 아름다움을 못내 사랑하여 차마 떠나지 못하고, 끝내 거기서 죽고 말았다. 임시로 선연동(嬋姸洞)에 매장(埋葬)하였다.' 선연동은 평양기생의 공동묘지가 있는 곳이다.

미술 전문 기자였던 윤철규 작가는 기원전 1세기 무렵 한나라의 사신으로 가 흉노에게 억류당한 소무(蘇武, ? ~ BC 60)의 이야기일 것이라 추측한다. 소무는 온갖 회유에도 굴하지 않고 절개를 지키다 북해로 쫓겨난다. 들쥐를 잡아먹거나, 풀과 열매로 연명한다. 전한의 부절로 지팡이 삼아 양떼를 쳤다. 자신이 살아있음을 기러기발에 묶은 편지로 한나라 궁중에 전하였다.

혹자는 도연명(陶淵明 365~427, 중국 동진의 문인)의 <귀거래사(歸去來辭)>가 소재라 주장하기도 한다. "외로운 소나무를 어루만지며 서성이고 있다.(撫孤松而盤桓)" 가 그것인데, 앞의 행에 '날마다 동산을 거닌다.', '지팡이에 늙은 몸 지지하고…', '때때로 머리 들어 먼 하늘을 바라본다.', '날기에 지친 새들이 둥지로 돌아온다.' 등이 나오는 데 거의 일치한다. 전원생활의 즐거움을 노래한 것이라 하지만, 전원생활 동기가 세상 기피 아니던가?

소무, 도연명 모두 고사인물도에 많이 등장한다. 위의 상황뿐 아니다. 은일사상, 노장사상 등이 배경이 되기도 한다. 물론, 격물치지나 물아일체의 경지도 맛보았을 것이다.

양동길/시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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