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윤 대전대 전 디자인아트대학장 |
지난 1990년으로 기억되는 일본 오사카의 꽃 박람회에는 세계의 건축가들이 초청되었고 영국정원의 파빌리온 '폴리'(우리의 옛 정자와 비슷함) 라는 주제로 각자 디자인한 건축작품 들이 현장에서 전시되었다. 여기서 특이했던 것은 그림 액자처럼 벽을 만든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작업이며 바로 명화를 감상하는 공간적 거리감으로 관람 적인 공간을 제안해서 주목을 끌었다. 이어 그의 '물의 교회'는 저수면 위에 세운 물 위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교회로 기존 예배당의 건축적 공간성을 완전히 바꾼 자연과의 일체화로 예배공간의 변화를 보여주었다. 또 하나 주목되는 작업은 일본 간사이 공항 매립토 제공으로 흉지가 된 고베지역의 아와지섬에 계획한 유메부타이(꿈의 무대) 가 있다. 화단과 건축을 병풍으로 드리워 정원인지 건축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간소함으로 자연의 여백을 풀어낸 건축이다. 건축과 자연을 일대일로 화합한 매우 독자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대응이고 동화처럼 자연을 품는다.
보이기 위해 만든 정원으로 일본의 정원을 일견하는 경우도 있지만 세밀하게 다가가면 변하는 자연을 그대로 품고자 하는 '자연의 흔적'으로 이해된다. 건축의 형태는 어렵지 않게 흉내 낼 수 있지만 이 자연의 정신을 내 품는 작업은 쉽게 따라 하기 어려운 일이라 생각된다.
미국의 건축가 루이스 칸의 건축에서도 자연과 공간에 깊은 사려를 보여 주었기에 벽돌에도 묻고 건축을 찾는 사람들의 시선을 묻는 그의 질문에는 지속되게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건축의 다른 시간 들을 묻고 있다.
우리의 전통 건축에도 이런 자연관이 뛰어난 정신과 품격은 항상 함께하고 있다. 바로 '내추럴 사이딩(자연을 품은 자연 이웃)'이며 자연, 인간, 공간이 화합하는 삶의 관계를 짓고 자연을 품은 극적인 장면이 그림처럼 이어지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나타내는데 주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내추럴 사이딩(Natural siding)' 시도는 이미 소쇄원과 같은 많은 지난 시간의 우리 건축을 통해 잘 드러나고 있다. 오랫동안 인간 스스로를 자연과 갈등하며 동경하고 이웃으로 살고 있음에서 얻어낸 이 '자연 이웃' 형식은 여러 장르의 방식으로 건축과 도시를 만드는 기반이 되어왔고 이 형식은 인간 삶에 원동력으로 지속적으로 작용해 왔다. 크고 작은 도시의 공원들은 현실의 적극적인 '자연 이웃 부침' 이고 자연을 동경하며 이웃 되길 바람에서 우리의 건축은 많이 열리고 닫는 시각적 조정을 통해 구성되는 친 자연성을 지니고 있다.
이제 도시건축은 내추럴 사이딩이 절실한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다. 세상의 재난이 끝도 없이 일어나고 있고 특히 지난 일본 후쿠시마 원전 폭파와 후속 재난이 남긴 상처는 복구에 엄청난 재정과 시간을 요하며 도시건축의 명료한 제시를 구하고 있다. 중동을 비롯해 세상 곳곳의 전쟁으로 인한 복구 역시 전 세계의 몫이다. 긴급을 요하는 대안도 필요하고 장기적인 복구 방식도 당장 마련하는 대비가 필요하다. '내추럴 사이딩' 은 편할 때 정신을 논하며 자연과 합류하는 한가한 논지가 아니다. 향후 인간의 생활환경이 더욱 냉담하지 않고 이웃할 수 있는 장기적 제시이며 긴 시간 스스로 변하며 가꾸어 가는 도시건축을 위한 논의의 시작이다. 어디를 먼저 비울 것인지 얼마만큼 비울 것인지 비운 만큼 모두에게 생명과 존재를 오래도록 인지하게 하는 자연과 건축은 바로 우리의 이웃으로 함께 하여야 한다. 열 평 남짓한 작은 공간에서도 또한 손 뻗으면 이웃집이 잡힐 듯한 비좁은 도심 한복판의 '튜브하우스(베트남의 가로주택)'에서도 한 뼘 하늘로 열린 공간이 있어 이들은 행복하고 길게 호흡하며 숨을 내뿜을 수 있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