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현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책임연구원 |
혼란은 급격한 변화에서 시작돼 '불확실성'에 의해 증폭된다. 불확실성은 완전하지 않거나 알 수 없는 정보를 수반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즉,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해 정확히 알 수 없거나 어떤 일이 일어날 가능성을 명확하게 추정할 수 없는 상태를 뜻한다. 이런 불확실성은 인간의 기본적인 심리적 불안감을 증폭하게 된다. 매슬로의 욕구이론에는 안전에 관한 욕구가 있는데, 신체적, 정신적 위험으로부터의 보호, 안정, 질서, 예측 가능성 등을 추구하는 욕구이다. 안전에 관한 욕구를 충족하지 못하면 다른 어떤 것에서도 만족을 얻을 수 없게 된다. 불안정성은 이러한 안전에 관한 욕구에 위협을 가하게 된다. 우리가 안전하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한 개인에 의해 예측하기 어려운 시점에 갑자기 깨어질 수도 있다는 경험은 마치 항상 단단히 지켜줄 것으로 믿었던 땅이 흔들리는 지진에서 오는 공포와 같다. 이러한 낯설고 갑작스런 감각은 사람들에게 혼란과 불안감을 유발하고, 상황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했다는 느낌을 주어 공포심을 증폭시킨다.
다행히 대한민국은, 아니 대한민국 국민은 강하다. 1997년부터 1980년으로 이어진 계엄 상황에서 대학생들은 시위문화의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고, 학내 시위는 노동자 시민 등 다양한 계층과 민주화라는 공동의 목표 아래 연대하고 저항했다. 2024년 12·3 내란과 계엄령에도 10대, 20대, 30대 젊은이들이 들꽃처럼 쏟아져 나왔다. 거리는 온통 '응원봉'으로 별처럼 빛났고, 질서 정연했지만 강렬하게 저항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그리 안정된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번 계엄령 위기 속에서 대한민국을 구하러 '응원봉'을 들고 나타난 10대, 20대, 30대 젊은 시민들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그들은 한밤의 추위를 두려워하지 않고 차가운 아스팔트도 마다하지 않았다. 1980년 계엄은 총과 최루탄과 백골단의 육모방망이에 화염병을 들었다면, 2024년의 계엄은 총과 장갑차에 '응원봉'을 들고 '다시 만나 세계'를 부르며 맞섰다. 이를 본 어느 외신 기자는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나라가 어두울 때 집 안에서 가장 밝은 것을 들고나온다." 기성세대가 만들어놓은 '불확실성'을 그들은 '응원봉'으로 치료하고 있는 것이다.
행동경제학에는 기준점 효과(또는 앵커링 효과)라는 것이 있다. 어떤 시점에 마주한 경험이 이후 인간의 판단이나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말한다. 어떤 큰일을 경험하게 되면 인간은 그 경험을 기준점 삼아 판단하고 행동한다는 것이다. 실험에 의하면 사람들은 "간디가 114세 이후에 사망했을까요?"라고 물었을 때가 "간디가 35세 이후에 사망했을까요?"라고 물었을 때보다 더 많은 나이를 추측한다는 것이다. 응원봉을 들고 불법적인 계엄에 맞서 계엄 해제를 끌어냈으며, 불법적인 행위에 저항한 경험을 한 젊은이들에게는 이 경험이 기준점이 된다. 이들은 혹시라도 다음에 또 이런 시도를 하는 세력이 있다면 이 경험을 토대로 단호히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나설 것이다. 아직 지속하고 있는 이들의 이 강렬한 경험이 앞으로의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지키는 등불이 될 것이다. 그들이 들고나올 가장 밝은 것이 될 것이다. 자랑스러운 우리 젊은이들은 '응원봉'으로 '불확실성'을 치유하고 있을 뿐 아니라 '불확실성 치유' 자체를 하나의 K-문화로 승화시키고 있다.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은 정말로 강하다. 김성현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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