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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윤 기자. |
최근 취재를 하다 말문이 턱 막히는 일이 있었다.
취재원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서로의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듣는 경우는 종종 있긴 하다. 그럴 때마다 "그 사람의 사정도 있지"라며 상대방을 어느 정도 이해해보려 하기도, 혹은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한참 생각해 어렵게 입을 열고 어떻게든 대화를 끝마치려 했다.
그러나 이날은 그러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어졌다. 뜨거워지는 마음과 떨리는 손발을 진정하는 것에만 몰두했다. 벌써 두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도저히 이해도 공감도 되지 않는다.
지난 10월 중순쯤이었다.
대전시 산하 출연 A기관에 대한 한 통의 제보가 들어왔다. 지난해 해당 기관 여성 직원이 후배 남자 직원에게 성희롱적 발언을 듣고 모욕죄 혐의로 신고했다는 내용 등이 담겨있었다. 이야기는 단순 성희롱 사건이 아니었다. 용기를 내 신고를 하니 기관 내에서 보복성 징계를 받고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다는 것이었다.
그중 내가 꼭 확인하고 싶은 게 있었다. 이 기관의 모 간부가 피해자를 향해 합의 종용을 했냐는 것이다.
제보자는 "A직원에 대한 첫 재판이 있기 전인 올해 여름 이 간부가 피해자를 한 두 차례 불러 합의를 하라는 식으로 이야기 했다고 전해 들었다"라며 "피해자의 친한 직장 동료들 몇 명에게도 '피해자가 취하하도록 이야기 해봐라'고 말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안타깝게도 사실 관계는 확인하지 못했다. 당사자의 답변은 끝내 듣지 못하고 홍보부로부터 입장을 전해 받아야 했다.
상황 설명을 들은 홍보 담당자의 말은 이러했다. "잘 모르겠지만, 엄마 같은 마음에서 그랬겠죠. 자식들이 싸우면 화해를 시키잖아요?", "신고한 여성 직원이 남자 직원보다 선배이고 나이도 많아요. 원래 엄마들은 첫째에게 더 양보하고 이해하라고 하니까...".
나에겐 합의 종용이 있었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게 됐다.
아무렇지도 않게 이 상황을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 비유하는 답변에 바보가 된 듯 어떠한 반박도 못 했다.
이 역시도 2차 가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최근에서야 알았다. 그간 찝찝했던 이유가 이 때문인 건가.
최근 한 판결문을 읽었다.
성희롱 피해자에게 "가해자를 용서해야 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불편하다"고 한 발언은 2차 가해라는 내용이었다.
이는 성희롱 사건의 피해자인 신고인들의 의사와 달리 가해자를 용서하지 않으면 더 큰 불이익이 올 수 있으니 신고를 취하하고 사건을 종결할 것을 종용해 신고인들에게 추가적인 피해를 입혔다고 법원은 판단했다.
성인지 감수성이 낮을 순 있다. 그러나 이로 인해 누군가는 상처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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