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엄마가 된 상사

  • 정치/행정
  • 대전

[편집국에서] 엄마가 된 상사

김지윤 정치행정부 기자

  • 승인 2024-12-25 16:59
  • 신문게재 2024-12-26 18면
  • 김지윤 기자김지윤 기자
쥬니
김지윤 기자.
"엄마 같은 마음에서 다들 잘 지냈으면 한 것뿐이지, 별다른 뜻은 없겠죠. 기자님도 잘 아시잖아요."

최근 취재를 하다 말문이 턱 막히는 일이 있었다.

취재원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서로의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듣는 경우는 종종 있긴 하다. 그럴 때마다 "그 사람의 사정도 있지"라며 상대방을 어느 정도 이해해보려 하기도, 혹은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한참 생각해 어렵게 입을 열고 어떻게든 대화를 끝마치려 했다.

그러나 이날은 그러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어졌다. 뜨거워지는 마음과 떨리는 손발을 진정하는 것에만 몰두했다. 벌써 두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도저히 이해도 공감도 되지 않는다.



지난 10월 중순쯤이었다.

대전시 산하 출연 A기관에 대한 한 통의 제보가 들어왔다. 지난해 해당 기관 여성 직원이 후배 남자 직원에게 성희롱적 발언을 듣고 모욕죄 혐의로 신고했다는 내용 등이 담겨있었다. 이야기는 단순 성희롱 사건이 아니었다. 용기를 내 신고를 하니 기관 내에서 보복성 징계를 받고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다는 것이었다.

그중 내가 꼭 확인하고 싶은 게 있었다. 이 기관의 모 간부가 피해자를 향해 합의 종용을 했냐는 것이다.

제보자는 "A직원에 대한 첫 재판이 있기 전인 올해 여름 이 간부가 피해자를 한 두 차례 불러 합의를 하라는 식으로 이야기 했다고 전해 들었다"라며 "피해자의 친한 직장 동료들 몇 명에게도 '피해자가 취하하도록 이야기 해봐라'고 말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안타깝게도 사실 관계는 확인하지 못했다. 당사자의 답변은 끝내 듣지 못하고 홍보부로부터 입장을 전해 받아야 했다.

상황 설명을 들은 홍보 담당자의 말은 이러했다. "잘 모르겠지만, 엄마 같은 마음에서 그랬겠죠. 자식들이 싸우면 화해를 시키잖아요?", "신고한 여성 직원이 남자 직원보다 선배이고 나이도 많아요. 원래 엄마들은 첫째에게 더 양보하고 이해하라고 하니까...".

나에겐 합의 종용이 있었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게 됐다.

아무렇지도 않게 이 상황을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 비유하는 답변에 바보가 된 듯 어떠한 반박도 못 했다.

이 역시도 2차 가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최근에서야 알았다. 그간 찝찝했던 이유가 이 때문인 건가.

최근 한 판결문을 읽었다.

성희롱 피해자에게 "가해자를 용서해야 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불편하다"고 한 발언은 2차 가해라는 내용이었다.

이는 성희롱 사건의 피해자인 신고인들의 의사와 달리 가해자를 용서하지 않으면 더 큰 불이익이 올 수 있으니 신고를 취하하고 사건을 종결할 것을 종용해 신고인들에게 추가적인 피해를 입혔다고 법원은 판단했다.

성인지 감수성이 낮을 순 있다. 그러나 이로 인해 누군가는 상처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받아야 한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한여성기업인협회 발대 "여성기업인이 국가 경제 견인하는 한 축으로"
  2. [대전다문화] 봄맞이 가족나들이, 보문산 등산
  3. [사설] 의대 정원 동결해도 ‘지역의료’ 괜찮을까
  4. 학교급식실 근무환경 어떻길래… 전국 15개 교육청 조리원 '결원 상태'
  5. [세상읽기] 왜 사과를 해야 하는가
  1. ‘느려도 괜찮아’, 어린이 거북이 마라톤대회
  2. 교육부 '지역인재 육성 지원 사업' 추진… 고교·대학 연계 강화
  3. '오락가락 의대정책' 수험생 혼란… 지역대 '24~26학번 트리플링' 우려도
  4. [사이언스칼럼] 발등에 불이 떨어지지 않게
  5. [2025 과학의 날] 연구개발 성과 한눈에… 2025 대한민국 과학기술대전 성황 중

헤드라인 뉴스


학교급식실 근무환경 어떻길래… 전국 15개 교육청 조리원 `결원 상태`

학교급식실 근무환경 어떻길래… 전국 15개 교육청 조리원 '결원 상태'

대전지역 학교 곳곳에서 급식 파행을 빚으며 급식 조리원들이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높이는 가운데 급식실의 열악한 근무환경을 알리는 실태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업무강도 완화를 위해선 인력 충원이 핵심인데, 현재 전국 15개 시·도교육청의 조리실무사가 결원인 상태인 것으로 확인됐다. 또 대구를 제외한 모든 지역의 신규 채용이 미달되고 채용된 인원도 절반 이상 자발적 퇴사를 하는 것으로 파악돼 대책이 요구된다. 17일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학비노조)이 조리원 7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5년 상반기 학교급식실 실태조사에 따..

문턱 더 낮아진 재개발·재건축…대전 노후아파트 재건축 활로 기대
문턱 더 낮아진 재개발·재건축…대전 노후아파트 재건축 활로 기대

국토교통부가 재개발·재건축 사업을 기존보다 쉽게 추진할 수 있도록 각종 규정을 조정한다. 재개발 정비구역 지정요건에 무허가 건축물을 포함하고, 재건축진단(옛 안전진단)은 세부평가 항목을 늘려 노후 아파트의 재건축 문턱을 낮추는 게 골자다. 대전에서도 노후아파트 재건축 추진 움직임이 최근 활발해지고 있는 만큼, 관련 절차 진행에도 활로가 뚫릴 수 있을지 주목된다. 국토부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시행령' 하위법령 개정안을 18일부터 다음 달 28일까지 40일간 입법 예고한다고 발표했다. '주택 재건축 판정을 위한 재건축진단 기준' 하..

대전시 "전국유일 결혼·출산 지표반등…청년이 살고싶은 도시"
대전시 "전국유일 결혼·출산 지표반등…청년이 살고싶은 도시"

대전시가 저출산과 지방소멸 등 국가적 위기 속 전국에서 유일하게 결혼과 출산 지표가 반등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전시의 기업유치 및 다양한 청년 우선 정책이 빛을 발한 것으로풀이된다. 대전시에 따르면 과거의 대전은 교통과 주거 등 인프라 측면에서 살기 좋은 도시라는 이미지가 짙었다. 그러나 지금 대전은 행정당국의 '기업 유치-대전 정착-결혼-육아-노인 복지'로 선순환 정책이 자리를 잡으면서 청년 세대에게 '살고 싶은 도시'라는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도시로 성장했다. 대전 청년 정책의 효과는 통계 지표에서도 명확히 드러난다. 통계청의..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가방은 내가 지켜줄께’ ‘가방은 내가 지켜줄께’

  • ‘느려도 괜찮아’, 어린이 거북이 마라톤대회 ‘느려도 괜찮아’, 어린이 거북이 마라톤대회

  • 감염병 예방 위한 집중 방역 감염병 예방 위한 집중 방역

  • 새내기 유권자들, ‘꼭 투표하세요’ 새내기 유권자들, ‘꼭 투표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