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광 원장 |
그런데, 돈이 부족하지 않더라도 은퇴 후 삶을 여유 있게 즐기지 못하고 서툴고 낯선 일에 도전하는 이들도 많다. 이들은 한결같이 나이에 비해 아직 몸도 머리도 다 건강한데 그냥 놀면 퇴물이 된 듯해서 견디기 어렵다고 말한다.
나도 60줄에 들어서는 이번이 마지막 도전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서툴러도 자꾸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된다. 이제는 할까 말까 망설일 때면 그냥 해야지 하는 결정에 나를 던져 넣는 습관도 생겼다. 도전은 힘들고 실패가 두려워 피하고 싶은 마음도 생기나, 호기롭게 흐름 속에 나를 던져 놓고 용쓰다 보면 어느새 일을 마치고 작은 성취감도 얻게 된다.
젊었을 때는 조급해서 무모하게 돌진했었는데, 지금은 늙는 게 두려워 자꾸 걸음을 재촉하는지도 모른다. 그럴수록 삶의 끝자락에 빨리 다가갈 텐데…
젊으니까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 도전할 때 젊은 것이라는 마음으로 떠나가는 젊음을 붙잡으려 애쓰는 것 같아 민망하기도 하다. 그러나 노년의 삶도 젊은이의 삶이 그러하듯이 앞이 안 보여 두렵지만 그래도 가야만 하는 길이다. 그리고 다음 생은 있기나 한 건지 알 수도 없으니 남은 동안이라도 치열하게 사는 게 나을 게다.
나이가 드니 가끔 생각하게 된다.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다는데, 그 끝은 어떨까? 보이는 이승의 삶도 이처럼 어려운데, 알지 못하는 저 너머를 마주한 마음은 어떨까? 그러나 지금 노년의 삶도 젊은 시절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살아보니 평범하고 소소한 행복이 있는 그저 그런 날의 연속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편하다. 저 끝에 맞닿은 그 날의 마지막 아침도 오늘처럼 평온한 날이었으면 좋겠다.
지금에야 젊은 날의 심장 벌렁 하게 하던 도전도 '생각해 보니 별거 아닌데 좀 더 느긋했었더라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처럼 인생의 끝자락에 서서는 지금의 나에게 "노년의 삶도 별반 다를 게 없다. 오늘이 제일 젊은 날이니 걱정 말고 즐겨라." 할지 모른다.
The best is yet to come. 즉, 내 인생의 최고 날은 아직 오지 않았다. 열심히 도전하다 보면 혹시 인생 후반기에 그날이 올지 모른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주변 사람이 걱정하지 않게 잘 늙는 것이다. 요즘 국내외 할 것 없이 예기치 않게 나락으로 떨어지는 사람이 많아 남의 일 같지 않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는데, 범부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것 같다. 평범한 사람은 꽃을 피웠다가 시들면 이름이 아닌 기억으로 남는다. 사람과의 인연도 헤어지면 유리창에 낀 성에처럼 기억 속에 뿌옇게 남는다. 내 어릴 적 또는 젊은 날, 만났던 사람들은 그들과 겪었던 기쁘거나 슬펐던, 때로는 화가 났던, 잊고 지냈던 순간들은 내 기억의 강 속에서 지금도 헤엄치고 있다. 이름도 잊힌 인연들과의 흔적이 내 기억의 심연 속을 떠다닌다. 내 흔적도 그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부유하고 있겠지. 누군가에게든 좋은 기억과 추억으로 남아야 할 텐데. 스친 인연이라도 남의 기억 속에서는 잊지 못할 악몽으로 남을 수 있으므로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겠다.
살다 보면 삶의 흔적이 켜켜이 쌓인다. 버리는 법을 알아야 할 텐데, 끌어안고 살다 보니 어제에 갇혀 내일로 한 발짝 뛰기에 버겁다. 얼마 전 마음먹고 모아둔 명함을 정리했다. 어떤 명함의 주인장은 벌써 내 기억에서 사라졌지만, 어떤 명함은 버리려니 마치 인연을 끊는 것 같아서 차마 버리지 못했다. 요즘 대세와 달리 SNS를 통해 지인의 삶을 들여다보는 데 관심이 없는 나는 남보다는 나에게 집중하기 쉽다. 중꺾마,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고 한다. 많지 않은 시간, 꺾이더라도 더 많이 도전해야겠다.
/양성광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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