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칼럼] 아보가드로 프로젝트와 실리콘-28 동위원소

  • 오피니언
  • 사이언스칼럼

[사이언스칼럼] 아보가드로 프로젝트와 실리콘-28 동위원소

손원혁 한국원자력연구원 첨단양자소재연구실 선임연구원

  • 승인 2024-12-19 16:50
  • 신문게재 2024-12-20 18면
  • 임효인 기자임효인 기자
clip20241219091149
손원혁 한국원자력연구원 첨단양자소재연구실 선임연구원
아보가드로 수에 대해 들어본 기억이 있을지 모르겠다. 일반인에게 낯선 아보가드로 수는 화학과 물리학에서 매우 중요한 자연 상수이다. 아보가드로 수는 탄소-12 동위원소 12그램(g), 즉 1몰(mol)에 들어 있는 탄소 원자의 개수로 정의됐었다. 하지만 측정 기술이 점점 발전하면서 값이 계속 변해왔고, 결국 현대에 와서 아보가드로 수를 정확하게 측정해보자는 일명 '아보가드로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 이 프로젝트로 아보가드로 수의 정의가 바뀌면서 1몰에 들어있는 아보가드로 수는 6.02214076×1023개라는 고정된 값이 되었다. 이렇게 복잡한 아보가드로 수는 어떻게 찾아냈고, 우리 생활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1860년대 중반 독일의 로슈미트(Johann Josef Loschmidt)는 최초로 아보가드로 수를 정확하게 추정할 수 있는 기초를 제시했으며, 로슈미트가 구했던 값을 아보가드로 수로 나타내면 4.4×1023개로 지금의 값과 약 27% 정도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당시의 과학기술 수준을 생각하면 굉장히 근접한 수치로, 이 실험은 과학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후 약 50년 뒤인 1909년 페렝(Jean B. Perin)은 브라운 운동을 통해 아보가드로 수를 정의하고자 했다. 브라운 운동은 작은 입자가 기체 혹은 액체 안에서 불규칙하게 움직이는 현상으로, 아인슈타인이 제시한 브라운 운동의 이론적 모델을 검증하는 과정에서 아보가드로 수를 계산하게 되었다. 이를 통해 페렝은 6×1023개로 지금의 값에 매우 근접한 아보가드로 수를 얻을 수 있었다.

기술의 발전에 따라 세월이 지날수록 점점 더 정밀한 아보가드로 수가 도출되었지만, 여전히 어떻게 측정하냐에 따라 값이 변할 가능성이 있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나라들이 협력해 아보가드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아보가드로 프로젝트는 실리콘-28 동위원소로 제작된 단결정 구체를 사용해 실험했다.



여기서 몰과 아보가드로 수의 정의는 탄소-12 동위원소를 기반으로 하는데, 왜 탄소를 실험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 수 있다. 탄소는 물리적으로 다이아몬드, 흑연, 풀러렌 등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해 밀도와 구조가 다르며, 고순도의 탄소-12 동위원소를 얻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었다. 반면 실리콘-28 동위원소는 이미 자연에 92% 이상 존재하고 있으며, 반도체 산업의 발달로 실리콘의 고순도 단결정 성장 기술이 매우 정밀한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에 실리콘을 선택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아보가드로 프로젝트에서 99.9995% 수준의 순도를 가진 실리콘-28 동위원소 단결정을 만들고, 이 단결정을 구체로 가공해 크기, 부피, 질량, 밀도 등을 매우 정밀하게 측정해 아보가드로 수를 6.02214076×1023개로 도출했다. 특히 과학자들은 아보가드로 수의 정확한 측정을 토대로 에너지와 파동의 관계를 나타내는 플랑크 상수값을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었고, 이때 측정한 플랑크 상수 6.62607015×10-34 줄·초(J·s)를 기본 상수로 고정했다. 이렇게 고정된 플랑크 상수를 이용해 킬로그램을 재정의할 수 있게 됐다. 우리가 무게를 표시할 때 사용하는 그 킬로그램이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는 이제 킬로그램을 금속으로 만든 킬로그램 원기가 아닌 변하지 않는 자연 상수를 기반으로 정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아보가드로 프로젝트에서 사용했던 실리콘-28 동위원소 기반 기술은 양자컴퓨터의 시대에서도 빛을 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스핀 기반 양자컴퓨터는 자연 상태의 실리콘에 내재된 실리콘-29 동위원소의 핵스핀에 의한 잡음에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실리콘-28 동위원소는 핵스핀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잡음이 없으며, 따라서 스핀 기반 양자컴퓨터를 개발하기 위해선 실리콘-28 동위원소의 순도가 매우 높은 기판을 성장시키는 기술이 중요하다. 이렇게 보면 양자컴퓨터의 시대에도 실리콘이 팔방미인으로 활약할 것으로 기대된다. 손원혁 한국원자력연구원 첨단양자소재연구실 선임연구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월요논단] 공공기관 2차 지방 이전, 이번에는 대전이다
  2. 의정부1동 입체주차장 운영 중단
  3. 김동연 경기지사, 반도체특화단지 ‘안성 동신일반산단’ 방문
  4. 대전 갑천변 수놓은 화려한 불꽃과 드론쇼(영상포함)
  5. 천안 삼은1번가 골목형상점가, '길거리 오픈축제' 개최
  1. 갑천습지 보호지역서 57만㎥ 모래 준설계획…환경단체 "금강청 부동의하라"
  2. 최대 1만 500세대 통합재건축…대전 노후계획도시정비 청사진 첫 공개
  3. [2025 보문산 걷기대회] 보문산에서 만난 늦가을, '2025 보문산 행복숲 둘레산길 걷기대회' 성황
  4. '교육부→복지부' 이관, 국립대병원 교수들 반발 왜?
  5. 쿠팡 개인정보 유출 2차 피해 주의보… 과기정통부 "스미싱·피싱 주의 필요"

헤드라인 뉴스


내포 농생명 클러스터 ‘그린바이오산업 육성지구’ 지정

내포 농생명 클러스터 ‘그린바이오산업 육성지구’ 지정

내포 농생명 융·복합산업 클러스터가 농림축산식품부의 '그린바이오산업 육성지구'에 1일 자로 최종 지정·고시됐다. 충남도에 따르면 이번 지정은 농식품부가 그린바이오산업 육성을 위해 추진한 것으로, 전국 11개 시도가 신청했고 최종 7곳이 선정됐다. 육성지구로 지정되면 국비 기반 공모사업 참여 자격과 기업 지원사업 가점 부여, 지자체 부지 활용 특례 등의 혜택을 받는다. 위치는 예산군 삽교읍 삽교리·상성리 일원 내포 농생명 융·복합산업 클러스터 부지로 지정 면적은 134만 2976㎡(40만 평) 규모이며, 오는 2030년 2028년까지..

`안전 지식왕`은 바로 나… 지난해 이어 2연패 퀴즈왕에 이목집중
'안전 지식왕'은 바로 나… 지난해 이어 2연패 퀴즈왕에 이목집중

충남 안전골든벨 왕중왕전을 향한 마지막 지역 예선전인 '2025 논산 어린이 안전골든벨'이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논산 퀴즈왕은 지난해에 이어 2연패를 달성한 학생이 차지하면서 참가학생과 학부모들의 뜨거운 관심을 모았다. 논산시와 중도일보가 주최하고 논산계룡교육지원청, 논산경찰서·소방서가 후원한 '2025 논산 어린이 안전골든벨'이 27일 논산 동성초 강당에서 개최됐다. 본격적인 퀴즈 대결에 앞서 참가 학생들은 긴장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지만, 본격적인 문제풀이에 돌입하자 침착함을 되찾고 집중력을 발휘해 퀴즈왕을 향한 치열한 접전이..

대통령실 “대통령 사칭 SNS 계정 확인… 단호히 대응”
대통령실 “대통령 사칭 SNS 계정 확인… 단호히 대응”

SNS에 대통령을 사칭한 가짜 계정으로 금품을 요구하는 범죄 정황이 확인돼 대통령실이 각별한 주의를 요청했다. 전은수 대통령실 부대변인은 1일 서면 브리핑을 통해 “최근 틱톡(TikTok), 엑스(X) 등 SNS 플랫폼에서 제21대 대통령을 사칭하는 가짜 계정이 확인돼 국민 여러분께 각별한 주의를 요청드린다”고 전했다. 가짜 계정들은 프로필에 '제21대 대통령'이라는 직함과 성명을 기재하고 대통령 공식 계정의 사진·영상을 무단 도용하고 있으며, 단순 사칭을 넘어 금품을 요구하는 등 범죄 정황도 포착됐다고 전은수 부대변인은 설명했다...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청설모의 겨울나기 준비 청설모의 겨울나기 준비

  • ‘사랑의 온도를 올려주세요’ ‘사랑의 온도를 올려주세요’

  • 대전 갑천변 수놓은 화려한 불꽃과 드론쇼 대전 갑천변 수놓은 화려한 불꽃과 드론쇼

  • 대전 제과 상점가 방문한 김민석 국무총리 대전 제과 상점가 방문한 김민석 국무총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