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오브 인터레스트 포스터. |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그 시절 그 끔찍했던 정황 바로 옆에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꿈꾸듯 중산층의 욕망이 도사리고 있었다는 것을 놀랍게 각성시킵니다. 멀리서 시체 태우는 연기가 보이고, 가스실 고문의 비명이 들려옵니다. 가까이로는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관리하는 간부의 가족이 남의 비극 위에 자신들의 행복을 구축하려는 '악의 평범성'을 보게 합니다.
<태풍클럽>은 40년 전 일본의 청소년들이 태풍의 비바람이 거센 토요일 저녁 학교를 해방구 삼아 욕망을 분출하는 이야기입니다. 강렬한 에너지가 화면 밖으로 뿜어져 나옵니다. 어린 청춘들을 그저 성인들의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존재가 아니라 질풍노도 같은 욕망의 주체로 드러냅니다. 1985년 작을 리마스터링한 것이지만 어제 막 만들어낸 듯 빼어난 걸작입니다.
<조커 폴리 아 되>는 전작과 대비해도 손색없을 만큼 잘 만든 작품입니다. 장르의 변화, 주제의 전환, 여전히 뛰어난 주인공의 연기가 그러합니다. 전작이 조커라는 악당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모순과 부조리를 신랄하게 비판했다면, 이 작품은 반영웅이 된 그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과 그 뒤에 도사린 욕망들에 대해 들여다보게 합니다. 그 가운데 누군가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의 자신이 되고자 하는 아서의 쓸쓸함이 절절히 묻어납니다.
<위키드>는 운명에 맞서 당당히 노래하는 젊은 여성을 보여줍니다. 환영받지 못한 출생, 흑도, 백도, 황도 아닌 녹색의 피부. 재능과 열정에도 불구하고 늘상 소외와 부당한 대우를 당하는 소녀 엘파바는 끝끝내 굴하지 않고 노래하며 춤을 춥니다. 어딘가에서 나타나 구해줄 백마 탄 왕자를 고대하거나, 애정과 욕망의 대상이 되지 못함을 한탄하지 않습니다. 스스로가 스스로를 건져내며 세계와 타협하지 않습니다. 글린다와의 우정과 경쟁도 아름답습니다.
<그녀가 죽었다>는 이미지를 향유하고 소비하던 대중 주체가 디지털 기술과 미디어를 활용해 이미지를 제작하고 유통하는 상황을 보게 합니다. 실체와 상관없이, 혹은 철저히 실체를 은폐하고 이미지만으로 존재하고자 하는 주인공과 그와 관련된 인물들의 이야기를 스릴러의 장르적 특징을 활용해 냉철하게 그려냅니다.
김대중 영화평론가/영화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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