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향기 대전창조미술협회 회장 |
그러나 이 계절의 정취 중 으뜸은 문방구에서 사온 작은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면서 눈이 소복하게 쌓여 있는 아득한 동화 속 마을이나 은박, 금박으로 반짝이는 트리를 보면서 따라 그려 보던 기억이다. 도화지를 카드 크기로 잘라 여러 장을 만들어 놓고는 물감을 풀어 행복하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갖고 있는 마을 풍경을 그리며 행복에 젖곤 했다. 우리 집 주변에서는 볼 수 없는 카드 속의 동화 마을은 비록 낡은 시골집 한구석의 작은 방에서 형제들이 오물 조물 지내면서도 나를 멀리 데려가서는 환상의 나라를 거닐게 해 주고, 비록 손에 얼음이 박혀 손등이 트고 따뜻한 방에 들어오면 근질 근질한 나를 눈내리는 마을로 데려가 그 속을 달리는 산타 할아버지의 썰매에 행복을 느끼게 해주었던 것이다.
모든 것이 부족하고 빈한한 시절이란 오늘날 이야기하는 것일 뿐이다. 막상 그 시절에는 빈한한 줄 몰랐고, 그것이 부족한 결핍의 생활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나름의 행복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 시절에는 결핍하거나 부족한 시절을 살았던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어리기는 했지만 무엇이 부족하다거나 그래서 행복하지 않다거나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던 것같다. 의례 그러려니 했으니 말이다. 지금의 눈으로 본다면 물론 모든 것이 부족하고 풍족하지 못한 시절이었음은 분명하지만 어릴 적 느꼈던 계절의 정취는 결핍이나 부족함과는 거리가 먼, 행복하고 꿈 같은 환상의 정취가 그득했던 것이다. 요즈음의 젊은이들 사이에는 무슨 무슨 데이라고 해서 여러 가지 이전에는 없던 풍습이 새롭게 자리를 잡아 가는 것같다. 나이든 사람의 눈에는 온통 상업적인 느낌이 너무 강해서 공감이 되지 않지만 풍속이란 변하는 것이니 새로운 풍속이 생기고 그 나름의 분위기와 정서가 있으리라 짐작된다. 하긴 스마트폰도 없고, 심지어 TV도 없던 시절과 지금의 풍속이나 정서를 맞비교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세상은 변해가는 것이고 그 속에서 새로운 것들이 생겨나고 사라지고 하는 법이니 말이다. 그래도 아쉬운 마음이 남는 것은 구체적인 겉모습이 아니라 어릴 적 한때라도 계절의 어느 한 시기에는 환상의 나라로 여행하거나 동화의 나라로 가서 느끼는 행복감이 여전했으면 하는 생각 때문이다.
피터르 브뤼허의 눈속의 사냥꾼이라는 그림이 생각난다. 마을보다 높은 언덕 위에 사냥꾼 세명이 사냥개를 무려 열두마리나 데리고 돌아오는데 장대에 걸린 사냥감은 겨우 작은 여우 한 마리 뿐이다. 발이 푹푹 빠지는 눈밭에 고개를 푹 숙이고 돌아오는 것은 사냥꾼 뿐 아니라 개들도 마찬가지이다. 소득이 별로 없는 힘든 사냥에 지쳐 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저 아래 내려다 보이는 마을에는 꽁꽁 얼어붙은 호수 위에서 스케이트를 타고, 썰매를 타는 아이들, 컬링하는 사람들, 땔감을 잔뜩 지고 가는 사람, 마차를 몰고 가는 사람들이 그득하다. 활기가 넘친다. 세상이 힘들고 어려워도 여전히 활력을 잃지 말자고 이야기하는 것같다. 그 힘은 가끔은 환상의 나라로, 동화의 나라로 여행하는데에서도 생겨나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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