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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열 수필가 |
주周나라 때는 밤이 제일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동지가 들은 12월을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는 달로 여겼다. 일 년 12달을 주역의 괘와 짝맞춘 '12벽괘설'에 의하면 12월은 '지뢰복'괘다. 음이 극에 이르렀다가 일양(一陽)이 다시 돌아왔다고 해서 복부(復)라 한다. 이때를 기점으로 땅의 깊은 곳에서 새싹이 꿈틀거리듯 희망이 싹튼다고 보았다. 조선 시대에는 이런 의미를 매우 중요하게 여겨 동지 무렵에 중국에 사신을 보내는 동지사(冬至使)가 있을 정도였다.
어수선한 세상 바람을 느끼며 조용히 한해를 되돌아본다. 연초에 올해 이루리라고 구상했던 목표가 현실의 공간 어디쯤에서 유영하고 있는지 자문해본다. 언제나 그렇듯 아쉬움만 남는다. 그래도 막막한 현실에서 이만큼 살아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의 말을 던져주고 싶다. 욕망이 춤추는 무대에서 스스로 일군 자취를 잘 살펴야 다가올 새해에 새로운 바람을 품을 수 있을 것이다.
풍경소리 칼럼을 처음 썼던 글을 다시 읽어보았다. 제목이 '거리두기의 행복'이었다. 그때는 코로나가 유행하여 물리적인 거리두기가 생존에 필수 조건이었다. 마침내 팬데믹이 종료되면서 사람과의 거리가 예전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하지만 인간관계에서는 여전히 적당한 심리적 거리두기가 중요하다는 내용이었다.
개인은 물론 국가도 서로의 거리두기에 따라 흥망성쇠를 맞는다. 하지만 시절 인연의 세찬 바람이 불 때는 어지간해서는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그것을 운명이라고 했던가. 심리적 거리에는 여러 변수가 영향을 준다. 무엇보다 서로의 가치와 이익과 손해를 보는 기준이 다를 경우 부조화가 생기고, 관계는 계절의 순환처럼 봄·여름·가을·겨울로 바뀐다.
돌아보면 세상살이는 인연의 그물망을 짜가는 일이었다. 부모·형제·자식 간이야 천륜으로 맺어진 사이라 어찌할 수 없다. 하지만 타인과의 관계는 거래의 법칙이라 인연의 끝남에는 감정의 굄이 생긴다. 관계는 바람처럼 정처 없이 떠나갔어도 여전히 머물러 있는 찌꺼기가 있다. 인연의 마침표를 찍고 새로운 인연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그것을 걸러야 한다.
늘 가까이하는 책이 있다. 논어와 노자이다. 논어는 학교(學)에서 시작해 지인(知人)으로 끝을 맺는다. 읽을 때마다 참 위대한 편집이라 생각한다. 인생은 배움을 통해 사유를 넓히고 자기와 남을 알아가는 과정임을 말해주는 것이 아닌가. 그에 비해 노자는 도(道)로 시작해서 다투지 말라는 부쟁불쟁(不爭)으로 끝난다. 세상은 상대적 가치로 돌아가는 심리적 공간이므로 저마다의 프리즘으로 보는 시비분별을 떠나 물처럼 그냥 흘러 아래로 내려가라고 한다.
공자에게 맹자라는 제자가 나타나 인의의 도가 이어졌듯 노자에겐 장자라는 제자가 나타나 무위자연의 도가 이어졌다. 장자는 '소요유'부터 시작한다. 사회가 부여한 갖가지 조건이나 욕망의 지표인 돈과 명예에 홀리지 말고 자족하며 살아가라고 붕새와 텃새라는 우화를 빌려 알려준다. 행복은 외적인 조건이 충족되어서가 아니라 주어진 조건 속에서 스스로 자기다움을 발견하고 놀다 가는 것이라고 들려준다.
지난 시절 열심히 일해 가난의 질곡을 극복하고 물질적으로 제법 살게 되었다. 그런데 삶이 갈수록 각박하다고 느껴짐은 무슨 까닭일까. 그것은 마음 밭이 갖가지 욕심 같은 잡초로 뒤덮여 그럴 것이다. 새해에는 비움과 관조로 내면을 고요하게 하고 마음 밭의 토양을 가꾸어보자. 그럴 때 나를 구속하는 것들에서 벗어나 좀 더 자유롭게 세상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지금 힘들어도 희망을 회복하고자 하는 12월을 보내는 마음 자세이리라. 세상에 대한 암울이 곧 희망으로 이어짐은 자연의 순환에서 배우는 이치가 아니겠는가. /김태열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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