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선 장학사 |
그러나 놀랍게도 시화의 주인공들은 연로하신 할머니들의 작품들이었다. 알고 보니 지역에 있는 평생학습관에 다니는 할머니들이 자작시와 그림을 직접 그린 시화들이라고 하였다. 한글을 모르는 할머니들이 글을 배우고 나서 직접 쓴 시를 정겹고 아기자기하게 꾸며 전시하는 자리라 가족들과 지인들이 축하와 격려를 나누며 훈훈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문득 7년 전 교사일 때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인근에 사시는 문해교실 할머니들과 함께했던 한글수업이 생각이 났다.
나는 그 때 마을교육 담당교사로 마을 자원을 활용한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었다. 어느 날 문해교실 강사님이 전화를 해서 할머니들이 학교를 방문할 수 있는지 문의를 했다. 할머니들은 평생 학교를 다녀본 적이 없어서 학교에 대한 동경과 호기심이 가득하다고 했다. 날짜를 잡고 학교에 오신 할머니들은 93세의 고령의 할머니부터 78세의 가장 젊으신 할머니까지 그 연령대가 다양했다. 심지어는 걷는 것조차 힘겨워서 다른 봉사자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분도 계셨다. 교정을 따라 걸어오시는 할머니들의 눈빛은 갓 들어온 1학년 입학생들처럼 설렘과 기쁨으로 반짝거렸다. 할머니들은 한글 해득 수준에 따라 1학년부터 6학년까지 고루 나누어 교실로 안내됐다. 1학년의 'ㄱ', 'ㄴ'부터 6학년의 동화책 읽기까지 할머니들은 각자의 수준에 따라 초등학생들과 수업을 받았다. 쉬는 시간에는 아침밥 먹기 활동을 이용하여 서천쌀로 만든 백설기와 식혜도 드셨다. 학생들 몸집에 맞는 책상과 의자, 가방과 학습용품을 쓸어보면서 한없이 부러운 눈길을 주셨다. "이렇게 좋은 세상에서 공부하는 너희들은 정말 복받은 아이들이다"며 "나도 어릴적 학교에 가고 싶었는데 아버지가 여자는 학교에 갈 필요가 없다며 안 보내주셨다"는 할머니와 "전쟁통에 학교에 다니지 못했다"는 할머니 등 학교를 다닐 수 없었던 각자의 사연들을 말씀하셨다.
할머니들은 마을회관에서 운영하는 문해교실을 다녔다. 일주일에 두 번 운영하는 문해교실의 회원들은 총 30여 명인데 별 탈 없는 한 대부분이 참석하신다고 했다. 공부한 내용을 기억하는 시간이 짧을지라도 할머니들은 한글공부를 열심히 하신다고 했다. 글을 배운 후 읽을 수 있는 글자와 간판 등을 보면서 한없이 좋아하신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강사님을 '선생님, 우리 선생님'이라 부르며 우리 반 아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게 따르셨다. 그 후로도 할머니들은 한 달에 한 번씩 학교에 오셔서 수업을 받았고, 학습발표회나 운동회 때도 초대하여 교육활동에 참석하도록 했다. 또 강당에 마련된 임시 영화관에서 아이들과 손을 잡고 영화도 함께 관람했다. 할머니들 역시 추석 즈음에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오셔서 아이들과 송편빚기를 하셨다. 면학의 즐거움은 다른 어떤 것과 견주어도 뒤처지지 않을 만큼 할머니들의 열정은 그 후에 시화전을 열고 발표회 개최로 이어졌다. 아이들 또한 할머니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통해 어른에 대한 공경심, 학교생활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좋은 기회였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칠판에 나와 분필로 자신의 이름을 쓰고 환하게 웃으시던 할머니의 함박미소가 떠오른다. '학교가 마을속으로, 마을이 학교 안에'라는 구호가 있지만 정작 마을과 학교는 가까운 듯 조금은 거리를 둔 관계였던 그 때, 나는 우리 아이들과 나이 많은 늦깎이 학생들과 함께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었다. 연필을 꾹꾹 누르고 이를 앙다물며 한 글자 한 글자 예쁘게 쓰시던 할머니의 아름다운 만학의 모습이 오랫동안 건강하게 유지되기를 희망한다./서천교육지원청 이미선 장학사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